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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정말 '공부'가 뭘까? (2017.11.20)

by 답설재 2017. 11. 20.

 

 

 

 


2017.10.24. 광남수사

 

                                                                                           

전국 고교(2358교) 중 야간자율학습('야자') 실시 학교는 1900개교(80.5%)! 그중 995개교는 밤 10시까지지만 11시가 넘도록 공부하는 학교도 245개교(12.9%)! 이 싸늘한 밤에도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야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렇게 말해 미안하지만 마음 든든하기보다는 그 고생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다. 아예 1학년 때부터 실시한다는 41개교 학생들은 '자율'의 의미나 알고 참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붙잡아둔다"고도 표현하지만 무슨 공부를 그토록 하는가 싶고 꼭 해야 한다면 밤낮없이 한곳에 모여 앉아 있기보다 다양한 곳에서 '더 자율적으로' 공부하면 안 되는지, 어떻게 그리 획일적, 전체적인 자율을 좋아하는지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또 교육학이란 결국 어떻게 가르쳐야 더 효과적인지 고민하는 학문일 텐데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좋다"면 그게 누구든 굳이 소용도 없는 그런 학문을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앨빈 토플러는 방한 때마다 "한국은 아직도 교육을 풀빵 찍듯 하고 있다"(2007)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교육으론 미래가 없다" "한국교육은 개인화해야 한다"(2008)고 주장했는데 애석하게도 지난해 유명을 달리해서 이젠 그 시원한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애석? 공부는 많이 할수록 좋다며 학습시간 총량을 제일로 치는 교육자는 그가 없는 세상을 "속이 시원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교육 '바꿔야'만 외칠뿐 20년간 하나도 안 변해"(이스라엘, 헤츠키 아리엘리), "AI가 유모어하는 시대, 100년 교육 습관 버려라!"(호주, 줄리아 길라드), "인생 N모작 시대, 창의교육 시급"(한국폴리텍대 이우영), "미래 일자리가 요구하는 역량 못 가르치는 게 진짜 위기"(인텔, 안잔 고시), "미래학교, 온라인 토론수업, AI가 시험문제 출제", "정답만 맞추어온 인재는 필요 없다"(고려대 염재호)… 최근 기사들이다.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 교육은 그런 요구들을 충분히 반영해 나가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생각들만 그러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지금 사고력, 비판력, 문제해결력 같은 고급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계획하지도 않고 있다.

문제와 배당시간이 국어·영어 각 45문항: 80분, 수학 30문항: 100분, 사회·과학 등 각 20문항: 50분씩인 시험에선 2~3분에 하나씩 실수 없이 답하는 속도가 절대적이다. 장시간 생각해서 뜻밖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다. 그나마 "다음 중 적절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유형이 거의 반반인 시험에는 생각 같은 걸 표현할 틈새조차 없다.

자율적이든 아니든 밤이 이슥하도록 문제를 푸는 학생이 유리하고 "교육사다리, 교육사다리"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질의응답을 하고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겠는가! 학생이나 학부모나 그걸 바랄 이유가 있겠는가! 어린아이는 연간 4만여 개 질문을 하지만 성장하면서 학교와 직장에서 정해준 규칙과 명령을 따르다 보면 그 질문이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직장인이 될 때까지 갈 것도 없다. 주입식 교육으로 질문은 일찍부터 통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서울대 교수들이 서울대 교육을 스스로 성토하겠는가. 중요한 내용만 필기하다가 시험 때 크게 당한 뒤로는 "교수님이 그냥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신 것까지도 다 받아쓴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울대 강의는 40년째 똑같고, 학생은 교수 말을 시나리오처럼 달달 외워" 교육이 사회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기야 줄곧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었다고 달라질 리 있는가!

주입식교육으로 유명한 일본의 수능시험은 2020년부터 국어, 수학부터 정답 없는 서술형으로 바꿔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평가하고 그동안 객관식이던 대학별 2차 시험에도 프레젠테이션, 에세이, 논술 등이 도입된다고 한다. 그 나라 교육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