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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아이들의 불행을 부르는 눈 (2017.8.14)

by 답설재 2017. 8. 13.

 

 

이젠 취학 전 아이들까지 놀 틈이 없게 되었다.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그냥 두어선 안 되지 싶은 조바심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의사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때부터 영어, 한자, 수학, 태권도… 이것저것 배우게 하는 석연치 않았던 현상의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5세 아이들의 경우 하루 학습시간은 3시간이나 되지만 실내·실외 놀이시간은 각각 1시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쟁 잘 시키는 별난 동네 얘기가 아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부모·교사 2276명을 표집 조사한 전국적 현상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편하게 지내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란 행복해서는 안 된다" "그럴 수 없다"는 논리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혹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던 말대로 어릴 때의 그 고생이 장래를 보장한다는 착각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과도한 사교육은 불안감, 우울증을 부르고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외면하겠는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눈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2학기에 웃고 싶다면, 여름방학 고생은 필수"! 7월 중순, 이른바 '진보적 관점'이 뚜렷한 어느 신문은 교육 특집 기사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고교 진학 뒤 대입 전까지 방학은 5회, 이 여름을 잘 보내야 2학기 공부와 다가오는 입시에서 웃을 수 있으므로 내 공부의 강점과 약점, 생활습관, 집중해야 할 입시전형 등을 고려한 방학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을 학년별로 설명한 기사였다. 교육에서 진보적 관점이란 어떤 것일까? 있기나 한 것일까? 방학(放學)을 시험 준비 기간으로 보는 건 어떤 가치관에 의한 것인가? 우리는 저 아이들에게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는 것일까?

 

방학의 취지 변질은 당연한 귀결이다. 교육과정 기준은 가장 이상적 학습기준이다. 방학의 변질은 그 기준이 망가진 사례다. 비범한 학생들을 뽑는 특별한 학교는 이 기준을 대폭 느슨하게 운영하는 것도 그렇다. 대학진학이 목표인 현실에서 지름길을 마련해준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학교교육에서 기준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왜 연간 며칠을 등교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해서 지키라고 하는가? 학교 급별·교과목별로 가령 국어는 몇 시간, 수학은 몇 시간, 체육은 몇 시간을 공부해야 한다는 기준은 어떤 철학에 따르는 것인가?

 

다 얽히고설킨 것이지만,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사회변혁의 선두에 선 학자들이 어떤 걱정을 하든, 주입식 암기 교육, 평가 중심 교육을 고수하는 고질적 관점도 있다.

 

그들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비판적·논리적 사고를 할 수 없으므로 창의성의 토대는 기억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관점으로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잡다한 지식을 주입한다. 그들에게는 그 방법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 자신도 학교에서 방대한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게 배운 사람은 배운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면, 교육은 연구할 필요도 없고 아예 발전할 수도 없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을 묻고 싶다. "제가 전에는 중요한 내용만 골라서 필기했거든요. 그러다가 시험에서 크게 당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웬만하면 다 써요. 교수님이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신 것까지도 다!"('서울대에서는 누가 A+을 받는가?') 이 고백이 기회 있을 때마다 대서특필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자신의 자녀가 어릴 때부터 비판적·창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럼에도 그 낡아빠진 교육방법을 지켜주고 싶은가? 혹 창의적 사고는 바로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 같은 특수한 인재에게나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우리 교육은 지식의 축적에서는 이미 인간을 추월한 인공지능 시스템과 끝까지 겨루어보겠다는 것처럼 무모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축적한 양에 따른 '한 줄 세우기'보다 나은 교육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 아이들의 무한경쟁을 통해서 증명해 내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