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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수능·학생부전형 개선의 길 (2017.9.11)

by 답설재 2017. 9. 10.

사오십 년 전 얘기여서 잊었을 수도 있고 우린 그렇지 않았다고도 할 것 같다. 그때도 평가는 골치 아팠다. 객관식만 찾지 말고 주관식도 좀 출제하라고 했고, 단답형에 그치지 말고 논술식도 내라고 했다. 교사들은 수긍하면서도 꺼렸다.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답형조차 간단한 건 아니었다. 가령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를 물었다고 치자. '의·식·주'를 써넣었어야 할 세 개의 ( ) 안에 수업시간엔 뭘 했는지 "어머니·선생님·교과서" "믿음·사랑·소망"이라고 써넣은 건 그렇다 치고 "옷·밥·집"이라고 한 것도 말썽이었다. 회의를 통해 근근이 정답으로 조정(인정!)되어도 교육청 감사가 나오면 교사들 간의 그 힘겨웠던 논의는 일거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 위상이 어떤 수준인지도 알 수 없는 7급, 8급 주사가 그게 어떻게 정답이 되는지, 학부모들이 수용하겠는지 꼬치꼬치 파고들면, '상급 기관' 관리를 설득할 만한 이론은 갖추지 못했고 별 도리도 없어서 결국 확인서라는 걸 써야 했다.

고초를 겪은 교사는 정신을 차렸다. "의식주란 가령 옷, 밥, 집 같은 것"이라고 열띤 설명을 하고 아리송한 활동을 전개하기보다는 5분쯤 '의식주' 석 자를 암기시키는 게 훨씬 수월하고도 효과적이라는 걸 실감했고, 주관식·논술식 출제보다는 객관식 출제가 '만사형통'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었다. 학부모들의 비판·감시의 눈길을 피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채점도 답의 번호만 보고 ○√ 표시를 하는 단순한 작업이어서 심지어 어떤 교사는 공정성(!)을 내세우며 채점 자체를 아예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맡겼다. 그런 짓을 하면서 주관식, 논술식을 강조하는 장학사들의 지도조언을 들을 때는 "교육청에서는 서로 배치되는 두 가지 주문을 한다!"고 빈정거렸다.

우리 교육은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여 91점과 92점은 다르다는 엄격하고 공정해 보이는 관점이 정립된 반면, 객관식 한두 문제가 과연 실력 차를 보여주겠느냐는 회의적 관점도 분명해졌다. 채점에 주관성이 작용하는 논술평가가 돌연 사교육의 원흉이 되기도 했고, 자기소개서는 학원의 지도 없이는 쓸 수 없는 것, 돈을 내고 남이 쓴 것을 '구경'하는 상품이 되었다. 교사들은 주관식·논술식 평가에는 도무지 소양이 없는 무지렁이처럼 취급하는 세상이 되었고, 그들에게 그런 평가를 맡기는 건 위험한 일이 되었다.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이 수능 절대평가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당초 예고와 달리 지난 8월말에 확정하지 못하여 1년 후로 유예되었다. 교육부에서는 현 중3에게 적용할 2021학년도 수능부터 영어·한국사를 대상으로 한 절대평가의 범위를 확대해서 통합사회·통합과학 및 제2외국어/한문에 적용하는 방안과 전 과목 전면 적용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었으나 견해차만 확인하고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수능개편안과 함께 학생부 종합전형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입전형 개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현장의 지적이 많았다고 했다. 또 김상곤 사회부총리겸교육부장관은 "내년 8월까지 수능, 고교 학점제, 내신 성취 평가제, 고교 체제 개편, 대입정책까지 포괄적으로 담은 교육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1년 유예는 어쩔 수 없다. 수능 한 가지를 고친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정상화될 리 없다. 절대평가가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변별력을 앞세우면 초·중등교육 자체가 대학의 학생선발을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변별력을 목표로 하여 가르치는 꼴이 된다.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을 제쳐놓고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다. 교사에게 맡겨 왔다면 변별력이 그리 문제가 될 리 없었을 일을 그동안 객관식 일변도로 그 권한을 박탈해놓고 이제 와서 학생부 종합전형을 절대평가 중심으로 바꾸려고 하니까 어려울 수밖에 없다. 1년, 짧긴 하지만 교육을 교사 중심으로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교사들이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면 누가 어떤 일을 제대로 바꿀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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