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랑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민음사 2015
1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을 가진, 그렇지만 희한하게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으로 온갖 악기(惡氣)를 잡아 몰아내면서 사립 M고교의 '에러'들을 수정해 나가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야기이다.
'보건교사'에 대한 무한한 기대, 향수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이건 하필 퇴마사(退魔師)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일들을 귀신같이 처리해준다면 신나는 일 아닌가. 온 나라의 각 학교에 이런 교사가 딱 한 명씩 있으면 좋겠다.
2
편모, 편부, 조손 가정이 많다. 그런 가정에는 정에 굶주리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을 지도 모른다.
조금만 다정하게 대하면 금방 다가오므로 그 메마른 정이 위험요소가 되기도 쉽다.
간단한 약품을 발라준 보건교사, 하다못해 열이 있는지 보려고 이마를 짚어본 보건교사…… 그 보건교사에게 모정을 느끼는 아이들을 봤다.
그런 아이는 '나는 지금 많이 아프다'고 생각하며 걸핏하면 보건실로 간다. 아무리 최면을 걸어도 아픈 곳이 생각나지 않는 쌩쌩한 날에는 까치발을 하고 창문 너머로 '안은영' 선생님을 들여다본다. 그런 아이에게는 한두 마디 대화가 등교(登校)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 아이가 보기에는 세상이 삭막하기 때문이다.
나는 함께 근무하는 그 보건교사에게 부탁했었다.
"저 아이에게 5분만 할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청소나 심부름을 시켜주셔도 좋겠지요?"
"중학교에 가면 어떻게 하죠?"
"세상이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참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정을 찾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고, 그런 사람이 세상을 따듯한 곳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요?"
3
세상에는 안은영 선생님 같은 보건교사도 많으니까, 그런 학교에서는 비록 퇴마사는 아니라 해도 그 보건교사 때문에 썩 좋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딴 데 정신이 팔린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일들.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윤정 《그대 손 흔들고 가시는 꽃길에》 (0) | 2018.03.25 |
---|---|
오츠 슈이치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 (0) | 2018.03.15 |
이재영 《세상의 모든 법칙》 (0) | 2018.02.27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0) | 2018.02.16 |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0) | 2018.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