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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by 답설재 2018. 2. 8.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LE LIVRE SECRET DES FOURMIS :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이세욱 옮김·기욤 아르토 그림, 열린책들, 1996

 

 

 

 

 

 

 

 

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는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상대성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성조차도 상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 그 어떤 것이 상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것은 존재한다.(606)

이 글을 읽고 비로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이 책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1996년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책 이름의 의미도 모른 채 읽었던 것입니다.*

 

 

2

 

쑥스럽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것도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비교적 길고 아무래도 좀 현학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것에는 가령 이런 것이 있습니다.

 

최소 공배수

동물에 대한 경험으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개미와의 만남이다. 고양이나 개, 벌이나 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개미를 가지고 한두 번쯤 장난을 쳐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개미와의 만남은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우리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그런데 우리의 손 위에서 걸어가는 개미를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개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더듬이를 흔든다.

둘째, 개미는 자기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간다.

셋째, 개미가 가는 길을 손으로 막으면, 개미는 그 손으로 옮아간다.

넷째, 젖은 손으로 개미 앞에 선을 그으면 개미를 세울 수 있다. 개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기라도 한 듯 머뭇거리다가 결국 빙 돌아서 간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과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초보적이고 유치한 이 지식이 활용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학교에서 우리가 개미를 공부하는 방식은 따분하기 이를 데 없다. 개미의 신체 부위 이름 따위나 외우라는데 솔직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198~199)

 

 

3

 

『상상력 사전』에도 당연하다는 듯 개미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개미를 제목으로 한 글을 다시 찾아보았더니 처음 부분과 끝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기껏해야 3백만 년 전의 일이지만, 개미들은 1억 년 전부터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들은 갈수록 규모가 커져서 수천만 마리의 개체를 수용하는 거대한 돔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77) (…)

개미들은 성공한 사회적 동물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개미들은 사막에서 북극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학적 환경을 차지했다. 개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았다. 개미들은 저희끼리 서로 방해하지 않고 지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79)

 

그런데 이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개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개미 이야기가 아닌 것도 다 개미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Le Livre Secret des Fourmis;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우리는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류는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1억 년 전부터 존재해 온 것에 비해, 인간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지는 3백만 년밖에 되지 않았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5천 년 전의 일이다.(5)

 

 

4

 

『상상력 사전』 이야기의 한 답글에서 "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릴 때부터 세상의 일들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중요한 것, 신기한 것, 더 알아보고 싶은 것……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일이 메모를 해가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는 얘기를 썼었는데 이번에 이 책 이야기를 하려고 살펴보다가 작가의 머리말에 바로 그 내용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하고 이것도 쑥스러웠습니다. 읽은 지 이십 년이 좀 넘어서 그렇게 되었으니 마치 제 짐작인 양 잘난 척한 걸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내가 여섯 살 때의 일이지 싶다. 어느 날, 나는 뜰에서 놀다가 문득 몸을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정원의 흙 속에 작은 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거주자들로 가득 찬,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였다. 그 시민들은 행렬을 지어 길을 가고, 오글거리며 일을 하는가 하면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5)

 

나는 열네 살에 백과사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잡동사니 창고 같은 것이었고, 나는 그 안에 내 맘에 드는 것을 모조리 던져 넣었다.

 

나중에 나는 파리에서 발간되는 한 주간지의 과학부 기자가 됨으로써 세계의 탁월한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얻은 정보 덕분에 내 백과사전의 내용은 한층 풍부해졌다. 그 정보들 중에는 가끔 나만이 알아낸 독점적인 것들도 있었다.(7)

 

이런 얘기들은 초·중·고 학생들이 읽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정말로 바빠서(어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외는 일만 해도 쉴틈이 없어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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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머리말에 이미 이렇게 써놓긴 했었습니다. '독자들은 틀림없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개미의 세계에 입문한 독자를 위한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에서 저마다 다른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사실 스스로의 기억을 개입시켜 이 책을 고쳐 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백과사전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9)

** 전체를 다 옮기려고 하니까 좀 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