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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글·그림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by 답설재 2017. 10. 5.

글·그림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돌베게, 1996

 

 

 

 

친구 블로거에서 "나무야 나무야"란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이 제목을 본 것 같습니다.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글과 그림, 사진으로 엮어 쉽게 쉽게 읽혔습니다.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 - 얼음골 스승과 허준

우리가 헐어야 할 피라미드 - 반구정과 압구정

당신이 나무를 더 사랑하는 까닭 - 소광리 소나무숲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줍니다 - 허난설헌의 무덤

……………………

 

이와 같은 제목으로 쓴 25편의 '엽서'입니다(백담사의 만해와 일해, 모악산의 미륵, 하일리의 저녁노을, 이어도의 아침해, 북한산의 사랑, 천수관음보살의 손, 잡초에 묻힌 초등학교, 온달산성의 평강공주,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한산섬의 충무공, 가야산의 최치원, 남명 조식을 찾아서, 섬진강 나루에서,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 석양의 북한강에서, 강릉 단오제에서, 평등의 무등산, 이천의 도자기 가마, 꿈꾸는 백마강, 철산리의 강과 바다).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아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줍니다"라고 쓴 엽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어린 남매의 무덤 앞에 냉수 떠놓고 소지 올려 넋을 부르며 "밤마다 사이좋게 손잡고

놀아라"고 당부하던 허초희의 음성이 시비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과 시대가 선포되고 과거와 함께 현재의 모순까지

묻혀져가는 오늘의 현실에 맞서서 진정한 인간의 고뇌를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우리를 힘 있게 지탱해주는 가치는 없다고 믿습니다.

중부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이 쉴 새 없이 귓전을 할퀴고 지나가는

가파른 언덕에 지금은 그녀가 그토록 가슴 아파했던 두 아이의 무덤을

옆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정승 아들을 옆에 거두지도 못하고, 남편과 함께 묻히지도 못한 채

자욱한 아침 안갯속에 앉아 있습니다.

열락(悅樂)은 그 기쁨을 타버린 재로 남기고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준다던 당신의 약속을 당신은 이곳 지월리에서 지켜야 합니다.(34~35)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1996년은 한창 교과서를 만들 때였습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은 것은 곧 모든 곳을 다 찾아가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런 꿈은 서글픔이나 슬픔이 되기가 십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