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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Das Parfum》

by 답설재 2017. 9. 22.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향수Das Parfum》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1995(초판 14쇄)

 

 

 

 

 

 

저 얼굴! 두 번째 읽고 발견했으니 의아한 일이 아닙니까?

 

 

 

 

소설도 이런 소설은 드물 것입니다. 향수(香水) 때문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1738년 7월의 무더운 날, 파리의 뒷골목, 악취가 피어오르는 생선 좌판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그 여인이 영아 살인죄로 처형당하여 유모들의 손을 거치며 자라게 됩니다.

유모들은 한결같이 그 아이를 무서워합니다. 지나치게 끈질긴 생명력과 탐욕에도 질리지만 아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 공포심을 유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증오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흉측한 몰골을 갖게 된 그는 놀랍게도 아무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예민한 후각을 지니게 되고 남몰래 그 후각의 천재성을 키워 나갑니다.

그 천재성에 관한 장면입니다. 우리가 책을 서장에 정리해두듯 그는 냄새를 정리해서 보관하는 성(城)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은 자줏빛 성(城)이었다. 바위로 된 황무지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성은 모래 언덕 뒤에 숨겨져 있었으며 늪 한가운데 7개의 바위로 된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날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 성에는 천 개의 방과 천 개의 지하실, 그리고 천 개의 훌륭한 응접실이 있었다. 더 이상 위대한 그르누이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한 남자로 돌아온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그중 한 응접실이 자주색 소파 위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하였다. 그런데 성의 모든 방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들이 있었고, 거기에는 그르누이가 일생 동안 모아 놓은 수백만 가지 냄새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성의 지하실에는 그가 지금까지 수집한 가장 좋은 향기들이 통 속에 들어 있었다. 그 향기들은 알맞게 익게 되면 병에 담겨져서 수킬로미터나 되는 습기 차고 서늘한 복도에 어디서 언제 수집했는지에 따라 진열되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평생을 마셔도 다 못 마실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마침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장 바티스트는 자줏빛 응접실에 있는 수수하지만 편안한 소파 위에 드러누워서는 (……) (169~170)

 

그런 그르누이가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꽃들을 채취하고 침지(浸脂)하고 정제하는 세상의 기술을 다 익히고 마침내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인간의 체취로 향수를 만들고자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현기증이 났기 때문에 그는 성벽에 몸을 기댔다. 그는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덜 위험하도록 그 치명적인 향기를 짧게 숨을 쉬면서 조금씩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성벽 너머의 그 향기는 빨강머리 처녀의 향기와 거의 유사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성벽을 넘어오는 그 향기도 그 빨강머리 처녀의 향기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걸 의심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르누이는 지금 향기로 알 수 있는 그 처녀의 모습을 그림처럼 눈앞에 떠올려 보았다. 그 처녀는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뜨거워졌다가는 다시 싸늘해졌다. 확실히 지금 그 처녀는 빨리 몸을 움직였다가 또 급히 멈춰 서는 그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냄새를 가진 다른 한 사람과 함께. 그녀의 피부는 눈이 부실 정도로 뽀앴으며 눈은 초록색이었다. 얼굴에는 주근깨가 솟아 있고 목과 젖가슴에도……. 그르누이는 한 순간 호흡을 멈추었다가 좀더 힘차게 냄새를 맡으면서 마레 거리의 그 처녀의 냄새를 다시 몰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있는 처녀는 젖가슴이 아직 없었다! 젖가슴이라고 말할 만한 게 아직 없었다! 주근깨가 여기저기 박혀 있는 이 처녀의 젖가슴은 한없이 부드러웠으며 아직 향기가 별로 없었다. 아마 며칠 전, 아니 몇 시간 전…… 사실은 바로 이 순간부터 비로소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한마디로 말해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어린아이였다!

그르누이의 이마에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는 어린아이란 아직 완전히 피기 전의 꽃봉오리처럼 특별한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꽃, 성벽 뒤에 있는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이 꽃, 그르누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주목한 적이 없는 그 꽃은 이제 향기의 봉우리를 막 내밀려는 지금부터 벌써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황홀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 (223~224)

 

스스로는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으면서 세상의 모든 냄새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로 향수를 만들고,  그 향수를 자신의 냄새로 만들게 됩니다.

 

「향수제조인의 도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시의 성문 앞에 있는 광장에서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나무십자가에 묶인 후 쇠몽둥이로 팔, 다리, 엉덩이, 어깨 등 그의 사지와 관절들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열두 대를 맞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리는 형벌에 처한다.」(295)

 

그게 판결문이긴 하나 그는 그렇게 죽지는 않습니다. '순결의 화신'(304)으로 변신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공동묘지에서 도둑, 살인자, 무법자, 창녀, 탈영병, 젊은 불량배 등 모든 종류의 천민들에게 갈기갈기 뜯어 먹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재미로 치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은 드물 것입니다. 두 번째 읽었는데―순전히 재미로―정말 처음 읽는 것처럼, 아니 이런 장면도 있었던가? 하며 읽었습니다. 순전히 재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