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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다자이 오사무 《사양 斜陽》

by 답설재 2017. 8. 25.

다자이 오사무 | 허호 옮김

《사양 斜陽》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2016

 

 

 

 

 

  2017.1.31. 경춘선

 

 

 

언젠가 초가을의 달 밝은 밤에 니시카타초에 있는 집 정원에서 나와 어머님과 둘이 연못가의 정자에 앉아 달구경을 하던 때의 일이다. 여우가 시집갈 때와 생쥐가 시집갈 때의 예물 장만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따위의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어머님이 불쑥 일어나 정자 곁의 싸리꽃이 울창한 안쪽으로 들어가시더니 하얀 싸리꽃 사이로 한층 선명하게 하얀 얼굴을 내밀고 살짝 웃으시며,

"가즈코, 엄마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맞혀 보렴."

하고 말씀하셨다.

"꽃을 꺾고 계신가요?"

하는 내 대답에 작은 소리로 웃으시며,

"소변이야."

하고 말씀하셨다.(171~172)

 

감상적인 초반부를 읽으며 200쪽 가까운 이 소설이 이렇게 전개되면 읽기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합본으로 된 이 작가의 『인간 실격』이 어두운 편이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일본 최후의 귀부인'은 결핵으로 죽고 그 부인의 딸 가즈코(이혼녀)는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남동생 나오지가 전쟁터에서 돌아와 퇴폐적인 생활을 하다가 자살해버립니다. 마침내 착하기만 할 것 같은 가즈코(이혼녀)마저 처자가 있는 작가, 자포자기와 향락주의에 빠진 우에하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가 우에하라에게 보내는 편지는 뭐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할 정도여서 이 여인이 앞으로 얼마나 부서지는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불량배가 좋아요. 그것도 딱지 붙은 불량배가 좋아요. 또한 저도 딱지 붙은 불량배가 되고 싶어요. 그러는 수밖에, 제가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은 일본에서 제일가는 딱지 붙은 불량배지요? 더구나 요즈음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더럽고 추하다는 식으로 미워하며 공격한다는 말을 동생에게서 듣고는 더욱더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당신이라면 애인이 많이 있겠지만, 머지않아 차츰 저 하나만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어쩐지 저는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또한 당신은 저와 함께 살며 매일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남들로부터 자주 "너와 함께 있으면 걱정을 잊는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남들의 미움을 산 경험이 없습니다. 모두들 저를 좋은 아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결코 저를 싫어하실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만나주세요. 이제는 답장도 필요없습니다. (……) (271~272)

 

가즈코가 우에하라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드디어 오리무중이구나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나온 2차 대전 후의 일본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황당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가즈코가 자신의 그런 생활에 대해 "도덕혁명"이라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다만 그 가즈코가 우에하라의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새 생명은 이 세상을 지탱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과 중간과 끝 부분이 너무나 달라서 참 이상한 소설을 읽었구나 싶고, 그러면서도 아무래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은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