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바다 냄새

by 답설재 2017. 9. 5.

 

2017.8.7.

                                                                    

 

그는 어머니가 단두대에서 참수된 그레브 광장에 갈 때도 있었다. 그 광장은 마치 커다란 혓바닥처럼 강 쪽으로 쑥 들어가 있었다. 그는 광장에 눕거나 강가로 가 보거나 혹은 기둥에 매여 있는 배에 다가가서 석탄이나 곡식, 풀과 물에 젖은 밧줄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러면 서쪽으로 강을 가로막고 있는 이 도시의 숲 속 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다. 바람은 시골 냄새, 뇌일리 부근 초원의 냄새, 생 제르맹과 베르사이유 궁전 사이에 있는 숲의 냄새, 루앙이나 카엥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의 냄새를 실어 왔다. 가끔 바다 냄새까지도 실어 오는 경우가 있었다. 바다에서는 물과 소금, 그리고 차가운 햇살이 묻어 있는 돛단배 냄새가 났다. 바다 냄새는 단순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하고 독특한 냄새였기 때문에 그르누이는 그것을 생선과 소금, 물과 해초, 신선한 공기 등의 냄새로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냄새를 나누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전체로서 기억해 두었다. 바다 냄새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아무것과도 섞지 않고 순수하게 간직해 그 냄새에 완전히 취해 버리고 싶었다. 바다는 아주 넓어서 며칠씩 항해해도 육지가 안 보일 정도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배 위의 가장 높다란 곳에 있는 돛대의 바구니에 앉아 바다 냄새를 끝없이 들이마시는 상상을 하곤 하였다. 그건 냄새라기보다 하나의 호흡, 길게 내쉬는 것과 같아 그는 그 냄새 속을 날아다니다가 그걸 들이마시면서 죽어 가는 상상에 곧잘 잠기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여기 강가에 있는 그레브 광장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한 가닥 바다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는 그르누이는 멀리 서쪽에 있는 진짜 바다, 그 커다란 바다를 그의 일생 동안 결코 볼 기회가 없었을뿐더러 그 냄새와 하나가 될 수도 없었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향수 Das Parfum》(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1995, 초판 14쇄), 50~51.

 

 

 

  1. 鄕愁(1.사물이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 2.타향에 있는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그로 인해 생긴 시름)가 아니라 香水(화장품의 하나)
  2.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