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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것들

by 답설재 2017. 9. 30.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것들











  5년이 지나니까 수학 교과서에 무슨 공식으로 그렇게 나와 있기나 한 것처럼 '우르르' 이사들을 가버리고 낯선 사람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그 자리를 채웁니다.

  '나도 떠났어야 했나?'

  '이렇게 남은 사람들은 경제 감각이 좀 부족하거나 뒤졌다는 건가?'

  '뭣보다도 어떻게 다들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새로 온 것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머리가 허연 나를 만나도 아주 '본 체 만 체'입니다. 전에 살던 것들도 그랬는데 새로 온 것들이 낯설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토박이'격(格)인 내 쪽에서 그것들이 꼴도 보기가 싫으니까 눈에 띌 때마다 일부러 인상을 팍 써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지낸 점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낯설지만 몇 번 마주쳤던 한 부부를 만나 또 인상을 쓸까 하다가―사실은 낯선 것도 아니어서 그러다 보면 낯선 체로 다시 이사를 가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럴 순 없다' 싶어서 아니꼬운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냉랭한 어조와 좀 부루퉁한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했는데 딴에는 좀 과감했던 그 순간!(내가 그렇게 입을 연 것과 거의 동시에!!!) 중년(中年)의 그들 부부가 요즘 사람들도 저럴 줄 아는구나 싶게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해왔고 명절이어서 자녀와 손주들이 몰려오면 반갑겠다느니, 그렇지만 고생도 심하시겠다느니, 겨우 몇 층 올라오는 그 몇 초 사이에, 아직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지금 이미 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했고, 황급하게 "예" "예" 하기만 한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 되자 잘 들어가시라고도 했습니다.


  인상이 참 더러워 보이던 그들 부부의 미소가 마치 나와 사돈이라도 될 사이처럼 혹은 보름달처럼 보여서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저것들을 잘못 본 건 아닐까?'1 의심스러워하며 엘리베이터를 나왔습니다.

  이런 얄팍한 인간이 있겠습니까? '저것들이 나처럼 멀쩡한 인간이라면 추석 연휴를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싶어지는 것입니다.








  1. 마치 여우가 둔갑한 절색의 여인에게 홀린 것처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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