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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첫 출근 날 아침

by 답설재 2017. 9. 28.

 

 

 

 

 

아침에 저 골목길을 걸으면 일쑤 옛일들이 떠오릅니다.

1969년 3월 2일.

그럭저럭 50년이 되어갑니다. 그날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 출근했습니다. 요즘 첫 발령을 받은 새내기 선생님들이 미리 학교를 찾아가 교장,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말씀도 듣고 학교를 둘러보기도 하는 걸 보면 나의 첫 출근은 한심한 것이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습니다.

 

아직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이른봄, 그날 아침에 입었던 체크무늬의 캐주얼 상의가 생각납니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교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땐 교육대학이 2년제였는데 교장선생님께서는 "사범학교 출신이 대부분인 학교에 드디어 육사 출신이 왔다"고 치켜세웠고 난로 곁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벌떡 일어서야 했습니다.

아마도 체육주임인가 하는 선생님이 조회 대형에 관한 계획서를 갖고 들어왔는데 그게 교장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뭐라고 몇 마디 하시더니 그 서류를 난로 쪽으로 집어던지며 고함을 지르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교장선생님을 지금도 선연히 기억합니다. 무서워서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추억이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이지 그분이 그립습니다. 아무리 깎고 깎아도 그분의 연세는 110세는 넘었을 것 같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아서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 출발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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