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것들
5년이 지나니까 수학 교과서에 무슨 공식으로 그렇게 나와 있기나 한 것처럼 '우르르' 이사들을 가버리고 낯선 사람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그 자리를 채웁니다.
'나도 떠났어야 했나?'
'이렇게 남은 사람들은 경제 감각이 좀 부족하거나 뒤졌다는 건가?'
'뭣보다도 어떻게 다들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새로 온 것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머리가 허연 나를 만나도 아주 '본 체 만 체'입니다. 전에 살던 것들도 그랬는데 새로 온 것들이 낯설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토박이'격(格)인 내 쪽에서 그것들이 꼴도 보기가 싫으니까 눈에 띌 때마다 일부러 인상을 팍 써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지낸 점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낯설지만 몇 번 마주쳤던 한 부부를 만나 또 인상을 쓸까 하다가―사실은 낯선 것도 아니어서 그러다 보면 낯선 체로 다시 이사를 가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럴 순 없다' 싶어서 아니꼬운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냉랭한 어조와 좀 부루퉁한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했는데 딴에는 좀 과감했던 그 순간!(내가 그렇게 입을 연 것과 거의 동시에!!!) 중년(中年)의 그들 부부가 요즘 사람들도 저럴 줄 아는구나 싶게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해왔고 명절이어서 자녀와 손주들이 몰려오면 반갑겠다느니, 그렇지만 고생도 심하시겠다느니, 겨우 몇 층 올라오는 그 몇 초 사이에, 아직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지금 이미 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했고, 황급하게 "예" "예" 하기만 한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 되자 잘 들어가시라고도 했습니다.
인상이 참 더러워 보이던 그들 부부의 미소가 마치 나와 사돈이라도 될 사이처럼 혹은 보름달처럼 보여서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저것들을 잘못 본 건 아닐까?'1 의심스러워하며 엘리베이터를 나왔습니다.
이런 얄팍한 인간이 있겠습니까? '저것들이 나처럼 멀쩡한 인간이라면 추석 연휴를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 싶어지는 것입니다.
- 마치 여우가 둔갑한 절색의 여인에게 홀린 것처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