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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by 답설재 2017. 5. 11.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김 행 숙

 

 

 

  신발장의 모든 구두를 꺼내 등잔처럼 강물에 띄우겠습니다

  물에 젖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진 구두를 위해 슬피 울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발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국가도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그 곁에서 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습니다

  기억의 국정화가 선고되었습니다

  책들이 불타는 밤입니다

  말들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긁어모은 낙엽처럼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밤, 뜨거운 악몽처럼 이것이 나의 밤이라면 저 멀리서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아침 햇빛이 내 눈을 찌르는 순간에 검은 보석같이 문맹자가 되겠습니다

  사로잡히지 않는 눈빛이 되겠습니다

  의무가 없어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나의 아침이라면 더 깊어지는 악몽처럼 구두가 물에 가라앉고 있습니다

  눈을 씻어도 내 신발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서서히 돌부리나 멧돼지가 되겠습니다

 

 

 

 

 

 

 

 

 

글이란 때로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시인은 때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

 

2016 미당문학상 수상작 3편 중 한 편.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무서운 시 좀 보자고 하면 이 시를 보여주면 되겠다.

설명도 해달라고 하면 쑥스럽지만 그건 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