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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남천南天」

by 답설재 2017. 3. 18.









남천南天



                                                                                                                  장이지



   옥상에 눈이 쌓여 있다. 식당 여자가 두 아들을 거느리고 옥상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논다. 마당은 두고 좁은 옥상에서 왁자그르르하다. 언 손의 여자가 눈을 굴린다. 젖은 장갑을 나눠 낀 두 아들이 눈을 굴린다. 눈사람 둘이 나란히 선다. 빨간 단추 눈을 달아주었더니 자기들끼리 마주 보고 웃는다. 여자는 아들들을 내려다본다. 쨍한 무지개의 머플러가 옥상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와 유쾌한 사람들의 추운 목을 포근히 감싼다. 눈 녹은 자리 벌써 움푹하다. 자꾸만 갈쌍갈쌍한 것이 어디서 온다.


  엄마.


  그날은 영문 모르고 좋아했는데 장사도 하지 않고 엄마는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을까. 마음의 눈이 내려 쌓이는 어떤 추운 날에는 동그란 등의 엄마 눈사람을 하나 만들어 마음의 옥상 한쪽에 세워두고 그 등을 한참 쳐다본다. 행주치마 두른 하늘 아래를 걷노라면 콧물은 왜 그리 눈치 없이 흐르는지. 늦게 나온 해는 또 왜 그리 속절없이 흘러, 흘러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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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김구용시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 수상.


                                                                             ― 『현대문학』 2017년 2월호, 186~187.







  옥상, 눈사람, 언 손, 젖은 장갑, 머플러…….

  식당 여자와 그녀의 두 아들.

  '왁자그르르' 웃음소리가 들린다.

  추억 속에서 그날의 것들이 갈쌍갈쌍하게 한다.


  가운데에 "엄마".

  "엄마"에게도, 나의 그런 날들처럼 무슨 속상한 일은 있었겠지만,

  그런 날들의 그 "엄마"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시인이라고 해서 좋은 일만 겪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에도 나머지 일들은 다 지운 것처럼 이렇게 떠올릴 수 있는

  詩人은 멋지다.





                                                                                                                20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