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
강주헌 옮김, 사회평론 2015
1
풍족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할 금기는 교양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폭넓은 지식을 함양하는' 교양 교육이라고 하면 미국과 미국의 크고 작은 대학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 교양 교육은 기피의 대상이다. 테크놀로지와 세계화로 정의되는 시대를 맞아, 모두가 기능技能에 기반을 둔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물론이고 교육자까지도 국가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능 중심 교육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이제 헛된 꿈을 그만 버리고 직장에서 필요한 기능과 능력을 실질적으로 함양할 방법을 강구하라고 재촉한다. 지식을 향한 폭넓은 탐구는 이제 어떤 결실도 맺을 수 없는 길이라 여겨진다.(11~12)
서두의 두 번째 문단입니다. 긴장감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의미가 그대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다 읽고나서는 아무래도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라는 본래의 제목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가는 시대의 분위기 때문에 연령을 불문하고 우리 모두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나도 인정한다. 우리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정도로 충분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또 심원하면서도 광범위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주변과 세상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역사를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확실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교양 교육을 조금이라도 더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211, 끝부분)
2
한두 문장도 기억할 수가 없겠지요. 기억해 두고 싶은 말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졸업 후의 세계에 적절하게 준비하려면 여러 학습법을 학교에서 미리 경험하며 다양한 지능을 개발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미국의 느슨하고 개방적인 고등교육 시스템에서는 이런 시도가 가능하다. 이런 이유에서 가드너1는 "심리학계에는 유아원은 프랑스에서, 유치원은 이탈리아에서, 초등학교는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는 독일에서, 대학은 미국에서 다녀야 한다는 농담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96)
20세기 초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이던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며 과학과 철학의 차이를 간결하게 설명해주었다.(172)
미국독립전쟁이 한창이던 때 존 애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정치와 전쟁을 공부해야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마음놓고 수학과 철학을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 (210)
파리드 자카리아가 바란 건 결코 아니었겠지만 교육에 대한 통계, 뛰어난 인물이 한 말을 암기하여 인용하는 것으로 돋보이고 싶어하는 어쭙잖은 행정가가 보면 눈이 번쩍 뜨일 내용들입니다. 교육부에서 내 상관이던 인물 중에는 그런 유형이 여럿이었는데 그런 인물일수록 책은 그저 책장 속에 넣어두는 사치품이어서 책을 읽는 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위인을 떠올려보더라도 처음 들으면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런 말들은 딱 한 번만 인용해야 할 것 같은데 자신도 그렇지 못하면서 남 이야기를 하려니까 스스로 쑥스럽고 한심함을 느낍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한 번만 더 들으면 '또 저 소리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3
지적인 모험과 독서의 의미2, 교양교육의 장점3, 교육의 의미4, PISA5, 세미나 강의와 온라인 교육(MOOC), 교육의 개별화6, 레지던셜 칼리지와 리버럴 아츠 칼리지7,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뽑히진 않지만 사실은 뽑혀야 할 학생(전형 방법)8 등 눈여겨보고 싶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가령 어떤 학생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중에는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나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한 대학의 입학 사정 책임자에게 "고등학교에서 그다지 좋지 못한 성적을 받은 아이들도 받아들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지체없이 "천만에요. 그런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받은 지원자에 비해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실패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실패를 딛고 회복하느냐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즉 개개인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자질이라고 지적했다. 그 입학 사정관도 교육을 깊이 연구한 학자답게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 (193~194)
4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도발적인 주장이 담긴 책!"
뒷표지에 적힌 홍보문입니다. '도발적인 주장?' '도발적'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주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재작년 11월 하순, 어느 신문의 이 책 소개문9은 1/2페이지나 되었는데 책을 읽은 후에는 그 글의 제목도 그리 탐탁치 않았습니다.
"하버드 교양교육은 다다음 바꿀 직업까지 대비한다"
처음에 인용한 서두의 문단만 하더라도 전혀 다른 내용이었고, 부끄럽게도 읽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그렇다면 그리 강하게 다가오지 않은 것이겠지요.) 하버드대 교양 교육에 관한 부분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드류 파우스트Drew Faust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 교양 교육은 학생들에게 "첫 직업이 아니라 여섯 번째 직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내용은 눈에 띄었습니다.10
그 지적은 3장('여섯 번째 직업을 위한 교육')에서 교양 교육의 장점을 설명하는 중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5
다음은 교양 교육의 장점에 대한 설명을 간추린 것입니다.11
* 교양 교육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특히 가장 핵심적인 장점은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교양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수 및 학습teaching and learning 형태인 세미나를 통해 책을 읽고 분석하고 분해하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다.
삶에서 성공하려면 동료들의 관심을 끌고, 당신의 의도를 상대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때로는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상대를 당신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개방식 사무실이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얼굴을 맞대는 만남, 가벼운 담소 및 대화를 독려하려는 목적에서 칸막이를 사무실에서 허물어뜨리지 않았는가.
*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것은 혼자 힘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이며 (…) 무엇보다 학습이 가장 큰 즐거움이며 가장 흥미로운 탐험이라는 걸 배웠다.
"하버드 교양교육은 다다음 바꿀 직업까지 대비한다"는 선언(!)적 문장이나 3장의 제목 '여섯 번째 직업을 위한 교육'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편협하고 전문적인 직업 교육 혹은 기능 교육을 강조하기보다는 교양 교육을 잘 받으면 어떠한 환경 변화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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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인간의 지능에는 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신체운동, 자연친화, 자기이해, 대인관계 등 적어도 여덟 가지 종류의 지능이 있다고 주장했다(이 책 96쪽) 이런 내용도 있다. '구글을 검색하면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는데 굳이 뭔가를 암기하려고 뇌세포를 학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가드너의 주장에 따르면, 여러 문화가 서로 접촉하며 다양한 의견과 분야와 학문이 충돌하는 환경에서 최적의 생각법이 탄생한다.(97쪽)
2. 70
3. 87, 91, 94
4. 98, 108
5. 115
6. 148, 152, 159
7. 163
8. 193
9. 2015년 11월 28일, ㅈ일보, 28면
10. 96쪽.
11. 87~95쪽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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