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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by 답설재 2017. 4. 19.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아름드리미디어 2016

 

 

 

 

 

 

 

1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야.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28)

 

우리는 봄과 여름 동안에는 덫을 놓지 않았다. 짝짓기와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동물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설령 짝짓기를 하고 난 다음이라 해도 사람들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으면, 그들은 새끼를 낳아 기를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인간도 굶어 죽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나는 동물들의 번식기인 봄과 여름 동안에는 주로 물고기만 잡았다.(191)

 

4월의 비에는 상쾌하고 들뜬 기분과 왠지 모를 서글픔이 함께 베어 있다. 할아버지도 항상 그런 감정들이 뒤범벅된 느낌을 받는다고 하셨다. 그 비는 서글픈 기분을 갖게 한다. 아무도 그걸 붙잡아둘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건 눈 깜짝할 새에 스러져가는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반대로 4월의 바람은 아기 요람처럼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 바람은 야생 사과나무가 분홍빛 반점을 가진 햐얀 꽃을 만개할 때까지 부드러운 숨결을 내뿜곤 했다. 인동덩굴보다 더 감미로운 그 꽃향기를 따라 벌들이 무리 지어 꽃으로 몰려들었다. 연분홍 꽃잎에 보라색 꽃술을 가진 칼미아는 골짜기에서 꼭대기까지 산 어디서나 자란다. 길고 뾰족한 노란 꽃잎들과 길게 늘어진 하얀 이빨 하나(내가 보기에는 항상 혓바닥이 늘어진 것처럼 보였지만)를 가진 얼레지 역시 그랬다.(184)

 

'작은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 소년의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날들은 주로 5, 6세 때였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 6.25 전쟁 직후의 그 산골 생활은 '작은나무'네 생활과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소년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는 산속 생활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본래 다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좀 딴 이야기지만 지금의 이 생활과 전쟁 직후의 그 헐벗고 굶주린 생활 중에서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물으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그리고 서슴지 않고 그때의 그 생활이 낫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때는 늘 행복했었습니다. 인디언처럼…….

 

 

2

 

소년은 체로키 족입니다. 체로키 족…… 사전을 찾아봤더니 애팔래치아 남부에 살고 있던 인디언으로, 북아메리카 인디언 중 유일하게 글자를 가지고 있고, 19세기 후반에 오클라호마 주의 보호지로 강제로 이주 당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소년에게도 따뜻한 일들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법(法)'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을 뜨고 있는데도 이 소년이 사생아라며 고아원에 넣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1학년 반에 넣었다. 그 반에서는 와인 씨가 가르쳐준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셈법들을 배우고 있었다. 뚱뚱하고 덩치 큰 여자가 수업을 끌어갔다. 그 여자는 무척 사무적이어서 눈곱만치의 어리석은 행동도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 여자가 사진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사슴 두 마리가 시냇물을 건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어찌나 서로 펄쩍거리며 뛰어오르고 있던지, 마치 누군가한테 떼밀려서 물 밖으로 솟아오른 것같이 느껴졌다. 덩치 큰 여자는 사슴들이 뭘 하고 있는지 누구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한 아이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사냥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 하나가 사슴은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서둘러 건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 여자는 뒤에 말한 아이의 설명이 맞다고 했다. 내가 손을 들었다.

나는 수사슴이 암사슴의 엉덩이 위로 뛰어오르는 걸 보면 그들이 짝짓기하는 중인 게 틀림없다, 게다가 주위의 풀이나 나무 모습들을 보더라도 그때가 사슴들이 짝짓기하는 철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 뚱뚱한 여자는 갑자가 얼이 빠진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입을 벌렸지만,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누군가 웃었다. 그 여자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여자가 들고 있던 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여자는 어디가 아픈지 한두 걸음 뒤로 비실비실 물러서기까지 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제자리에 서 있던 그 여자가 갑자기 내 쪽으로 달려왔다. 교실 전체가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여자는 내 멱살을 움켜쥐더니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 여자는 얼굴을 벌겋게 붉히면서 고함을 질렀다.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우리 모두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이, 이렇게 추잡스럽다니…… 이 사생아 녀석아!"(335~336)

 

 

3

 

'법'을 집행한 사람들은 그 체로키 족 소년에게 사과를 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기가 싫어서 무슨 핑계를 대었을까요?

사과를 하지 않았다면 '법'은 너무 뻔뻔한 것 아닐까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힘이니까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아무려면 어영부영 세월만 가지는 않았겠지요. '법'도 좋은 것, 합리적인 것이고,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한 사람들은 멋진 사람들이고, 체로키 족도 바보들은 아닐 테니까요. 겨우 여섯 살 때 죽은 이의 영혼을 생각한 부분만 읽어봐도 체로키 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할아버지와 나는 그의 영혼이 눈 속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자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쳐 가더니 늙은 전나무 가지를 흔들어댔다. 할아버지는 그 바람이 윌로 존이라고 하셨다. 그는 그만큼 강한 영혼을 갖고 계셨다. 우리는 그 바람이 산등성이에 서 있는 높은 나뭇가지들을 휩쓸고 난 뒤 산허리로 달려내려가 까마귀떼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까마귀들은 까악까악 울면서 윌로 존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윌로 존이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들 저 너머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윌로 존이 돌아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바람 속에서 그를 느끼고, 나뭇가지들의 속삭임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각자의 긴 칼로 늙은 전나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무덤을 팠다. (…) (368~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