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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현강재'의 설악산

by 답설재 2016. 9. 13.

 

'현강재'에서 가져온 울산바위

 

 

 

'현강재'

강원도 고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의 블로그 이름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총리겸교육부장관을 지낸 분이다. 김영삼 정부 때도 교육부장관을 지냈다.

 

나는 그 이전에 교육부에 들어가서 그분이 두 번째 장관을 지낼 때까지도 그곳에서 근무했다. 애들 말마따나 "죽도록" 일했다. 그렇지만 뭘 했느냐고 물을 때 대답할 말을 아직도 준비하지 못했다. 일기(日記)는커녕 메모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지쳐서 숨 좀 쉬고 준비한다는 게 이렇게 됐다.

묻는 사람도 없긴 하다.


일전에 '현강재'에 가서 "저 울산바위를 닮으셨는가, 그래서 그곳에 계시는가 생각했다"면서 블로그에 장기간 새 글이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지만 농사일 때문이겠지 한다는 댓글을 달았더니 이튿날 "가을의 문턱에서"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가을의 문턱에서

 

 

험한 산을 오르려면, 산 정상 가까이 '깔딱고개'라는 데가 있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서 한 걸음도 더 옮기기 어려운 지점인데, 그것만 넘으면 정상까지 큰 힘 안 드리고 오를 수 있는 산행의 마지막 고비다. 그런데 요즈음 내 심경은 마치 막 깔딱고개를 넘은 등산인의 느낌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나마 이곳은 '재난' 수준이었다는 서울에 비해 기온이 3-4도 낮았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처음 겪는 폭염이었다. 덥다고 농사일을 소홀히 할 수 없어 한낮의 뙤약볕만 피하면서 농터에서 잡초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농터 300 평, 집 앞 잔디와 뒤뜰 화단 200평, 도합 500평을 농약, 제초제 쓰지 않고 비닐/부직포 피복 없이 관리한다는 게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몸무게도 5월 이후 매달 1Kg씩 빠져 30대 이후 처음 75Kg을 기록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년 한여름이면 한두 번 허리나 발목 통증으로 고생을 하는데, 올해는 별 탈 없이 '깔딱고개'를 넘긴 것이다. 잘 버텨 준 내 몸에게 감사한다.

 

지난주 40여 일 만에 잠시 서울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세월이 너무 빨리 달려간다고 푸념하며 "벌써 9월이 아닌가. 올해도 다 간 거야"를 되뇌었다. 나는 세월이 빠르다는 데는 동의했으나, 올해도 다 갔다는 데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도 황금 같은 네 달이 남았는데. 여년(餘年)이 그리 길지 않은 우리에게 네 달이 어딘가.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제 시작이야"라고 작게 속삭였다.

 

'깔딱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시간은 내 편이다. 그간 미뤄두었던 산행도 하고, 인적 끊긴 바닷가도 나가 봐야지. 한가한 마음으로 청명한 하늘, 황금들녘, 안개 낀 설악의 연봉도 바라보아야지. 얼마 후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내 마음을 적실 것이고, 그리고 또 얼마 안가, 첫사랑을 닮은 흰 눈이 내리겠지. 아 참! 오랫동안 소홀이 했던 '현강재'에도 자주 글을 올려야지. 무엇보다 밀린 공부를 하고 내 영혼을 담은 글을 써야지. 이 모든 일이 내게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 일인가. 또 얼마나 호젓한 산촌의 가을, 그리고 초겨울에 어울리는 일들인가.

 

앞으로 네 달,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벅찬 마음으로 내다본다.

 

 

                                                     현강재 가는 길 ☞ http://hyungang.tistory.com/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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