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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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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by 답설재 2016. 7. 19.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오유리 옮김, 문예출판사 2015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성이 막무가내인 "도련님"은 엄마, 영감(아버지)이 세상을 떠나자 형으로부터도 버림받고 혈혈단신이 된다. "도련님"이란 호칭은 늙은 가정부 기요만의 것인데, 명문가 처녀였던 기요는 끝까지 "도련님"이고 도련님의 출세를 믿는다.

 

걸핏하면 "도쿄 토박이"를 내세우는 그는 냉정한 척해도 사실은 따뜻하다. 화가 나도 상대를 머리로는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어리숙하고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시코쿠 "촌구석" 중학교 수학 선생이 되어 기요와 헤어진다. 몸이 아파 누워 있던 기요는 혈혈단신 손자와 헤어지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머리부터 단정히 하고, 가는 곳이 어디쯤인가 묻고, 선물로 사다줄 걸 묻자 갈엿이 먹고 싶다고 하고, 치약과 칫솔을 사준다.

언제 집을 장만하게 되느냐고 묻기도 해서 애잔하게 한다.

 

기요와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을 기대하며 읽어 나갔지만 학교에서 겪는 온갖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교장 면담, 부임 인사, 마을 구경, 음식점 순례, 학생들과의 좌충우돌, 숙직 소동, 교장·교감과의 갈등, 희한한 교사들, 하숙집 주인의 기행, 학생 징계 회의, 착한 교사의 약혼녀를 가로챈 교감, 송별회, 교장과의 담판……

 

"도련님"에 따르면 교원 군상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떠벌이처럼 잘난 체하고 필요 없는데도 얼굴을 디미는 놈이 있는가 하면 거센 바람처럼 내가 없으면 이 나라가 안 돌아가지 하는 표정을 늘상 짓고 있는 녀석도 있다. 거기에 빨간 셔츠처럼 화장품과 잘난 얼굴 팔아요 하고 다니는 놈에, 교육이 살아서 예복을 입으면 바로 나야 하는 너구리도 있다. 저마다 자기가 잘났다고 힘주고 있는데 끝물 선생만은 있는 듯 없는 듯 인질로 잡힌 인형 같은 게,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얼굴은 좀 부어 있지만 이런 사람을 버리고 빨간 셔츠에게 기울다니 마돈나도 알 수 없는 여자다.(109)

 

'떠벌이'는 미술 선생, '거센 바람'은 선배 수학 선생, '빨간 셔츠'는 교감, '너구리'는 교장, '끝물 선생'은 교감에게 약혼녀 '마돈나'를 빼앗기고 교감의 술수로 가기 싫은 전근을 가는 교사이다.

도련님은 기생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빨간 셔츠와 떠벌이를 선배 수학 선생 거센 바람과 함께 흠씬 두들겨주고 도쿄로 떠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당연히 빨간 셔츠 같은 교감, 너구리 같은 교장, 떠벌이 같은 교사가 읽어야 할 소설이긴 하지만 거센 바람 같은 교사, 도련님 같은 교사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면 다른 교사들도 읽는 것이 좋겠다.

 

마음 편하게 읽었다. 이미 퇴직을 해서 그렇겠지?

'너구리' 같은 교장이나 '빨간 셔츠' 같은 교감, '떠벌이' 같은 교사들에게는 당연히 불편할 것이다.

 

 

 

해피엔딩이다. 모처럼 해피엔딩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기요 때문이다.

 

"기요, 나 돌아왔어" 하고 뛰어들어갔더니 "아이고 도련님, 우리 도련님. 일찍 돌아오시네요" 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나도 너무 기뻐서 "이젠 시골에 안 갈 거야. 도쿄에서 기요하고 같이 살 거야" 하고 말했다.

그 후 어떤 사람의 소개로 철도회사의 기수로 취직했다. 월급은 25엔이고 다달이 내는 방값은 6엔이었다. 기요는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은 아니지만 나와 같이 지내면서 항상 "좋아요. 기뻐요" 하다가 올 2월 폐렴으로 죽었다.

죽기 전날, 나를 불러서 "도련님 부탁이 있는데요. 내가 죽으면 도련님 다니시는 절에다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 오시길 기다리면 좋겠어요" 했다. 그래서 기요의 묘는 고비나타에 있는 요겐지에 있다.(181~182)

 

두 단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 유령 소동을 일으키는 소심한 성격 이야기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

* 흥미진진한 공상 《런던탑》.

 

 

# 덧붙임(2017.7.28)

 

일본 근대소설의 개척자,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무정」1(1919)의 이광수와 흡사한 존재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도쿄제대 영문과 국비유학생으로 영국 유학 후 귀국, 제1고보 및 도쿄제대의 강사로 활동하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라는 첫 소설을 쓰고 교수 및 국가 박사도 거부, 신문사 전속 소설가로 나섰다. 『도련님』 『산시로』 『마음』 등의 걸작을 썼고 『문학론』 등의 논저로도 유명하다.

 

                                  ― 김윤식 「문학에서의 고양이猫―나쓰메 소세키와 황순원 그리고 헤밍웨이」
                                                                                                           (『現代文學』 2017년 6월호 286)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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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명은 『』, 이광수의 작품명은 「」를 써서 나타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