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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이거 네가 그렸지?"

by 답설재 2016. 7. 4.







"이거 네가 그렸지?"












  "이거 네가 그렸지?"

  어머니는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저승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벌써 44년째입니다.

  48세의 초겨울, 노란 하늘을 날아 그곳으로 갔으니까 기다리다가 지쳤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생전에도 나 때문에 지쳤고, 죽어서도 나 때문에 지쳐야 하는 운명입니다.

  "늦었네? 재미있었지? 그애가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

  그렇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미안하게 됐어요. 살다보니까 그새……."


  묻고 이야기할 게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 묻고 이야기하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손이나 잡고 있다가 면회 시간을 다 보내고 말 것입니다.

  어쨌든 단 한 번만 그 품에 안겨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습니다.





  "이거 네가 그렸지?"

  어머니가 실제로 그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이미 심장병에 걸려 걸핏하면 누워 있었습니다. 농삿일을 하지 않는 겨울철이었고―그럴 때라야 마음놓고 앓아누울 수 있어서― 그러니까 겨울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누워 있는 어머니께 저 두 영정과 내가 그린 영정 두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게 네가 그린 건지 얼핏 봐선 모르겠네."





  우리 선생님은 영정 10여 점을 교실 창문 위의 벽에 나란히 걸어두었습니다.

  "얘들아! 이런 인물들을 닮도록 해라!" 하고 싶었거나 교실 꾸미기의 마땅한 자료가 없던 차에 마침 잘 됐다 싶어서 그 영정들을 붙여 두었을 것입니다.

  교장선생님과 장학사님이 그걸 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일년 내내 그 영정을 바라보면서 공부는 대충 하고 거짓말, 장난, 싸움을 더 많이 했습니다. 


  드디어 방학하는 날, 아이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렸던 나는 그 영정을 그려보고 싶다며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몇 장?" 했고, 나는 여러 장을 달라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두 장만……."

  그래서 고른 것이 이순신 장군과 정몽주 선생이었습니다.

  마분지에 붙인 하나하나의 흑백 영정 위에 훼손 방지용 미농지가 곱게 덮여 있는 그것을 자꾸 들여다보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개학하는 날, 나는 저 영정과 방학숙제로 그린 영정, 그러니까 어머니는 구태여 그걸 구분하지 않은 원본과 사본을 함께 제출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그린 영정에 대한 선생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끝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굳이 화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교사가 되었다가 벌써 퇴임까지 했고, 오늘까지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