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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내가 이런 선생님이었더라면...

by 답설재 2016. 3. 1.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는 내가 다닌 첫 번째 진짜 학교였다. 그러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 학교에서 보낸 시절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커윈 선생님은 지식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기 드문 교육자였다. 난 언제나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학생들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는 선생님이 아는 지식을 학생들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또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욕망에서 우러나왔다고 믿고 싶다.

 

커윈 선생님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선생님의 여동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20년 넘게 선생님으로 일했다. 키가 크고 혈색이 좋은 은발의 토실토실한 숙녀인 커윈 선생님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서는 학기 말이 되어도 처음 받을 때처럼 깨끗하고 페이지도 빳빳했다. 커윈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펴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거나 거의 하지 않았다.

 

커윈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할 때면 언제나 학생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어른이 십대 아이들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을 대접하면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오늘 《크로니컬》지에 캐롤라이나 주의 광산 업계에 관한 기사가 (또는 그 밖에 수업과 동떨어진 어떤 주제) 났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기사를 읽었겠죠. 누가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는데요."

선생님 반에서 처음 이 주가 지나자, 흥미를 느낀 나는 다른 학생들처럼 나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하는 신문들과 《타임》, 《라이프》, 그 밖에 구할 수 있는 잡지들을 구해서 읽었다. 커윈 선생님은 베일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언젠가 베일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지식이란 시장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화폐 같은 거야."

선생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다. 선생님은 아무도 편애하지 않았다. 어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만족시켰다고 해서 다음 시간에도 특별한 대우를 받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었으며,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매 시간 새로운 기분으로 우리를 대했고, 우리 역시 그럴 거라고 기대했다. 과묵하고 주관이 강했던 선생님은 시시한 일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었다.

선생님은 위협하는 대신 자극했다. 어떤 선생님들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나를 친절히 대했다. 나를 '관대하게' 대했다는 말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러나 커윈 선생님은 내가 흑인이고 그래서 어딘가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단순히 존슨 양이었을 뿐이다. 선생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했어도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맞아요." 이상이 아니었고, 그것은 맞게 대답하는 다른 모든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하는 말이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와 선생님 교실을 몇 차례 찾아간 적이 있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내 이름 존슨 양을 기억하면서 깊이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는데 반드시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방문할 때마다 선생님은 한 번도 나를 선생님 책상 옆에 오래 머물도록 권하지 않았다. 내가 틀림없이 다른 데 또 가볼 곳이 있을리라는 듯이 행동했다. 나는 가끔 선생님은, 자신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스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곤 했다.

 

마야 안젤루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2014(2판5쇄), 282~284.

 

 

 

마야 안젤루는 2014.5.28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타계했다(향년 86세). 2011.2.15일, 백악관에서 자유훈장을 받고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키스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14.5.29)

 

 

  내일 새 학년도가 시작됩니다.

  앞에서 '학교가 무서운 교사들'이라는 글을 썼지만,

  아이들은 지금 새로 만날 선생님을 그려보고 있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열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온갖 일그러진 행동을 하지만,

  아이들은,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저녁 그 아이들을 그려보며 설레는 마음을 가눌 길 없는 선생님도 많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거의 그런 선생님이었습니다.

 

  나는 학교를 나온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이 서럽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로 가서 "내가 그만 돌아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서, 마야 안젤루를 가르친 커윈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아직도 학교에 남아 있는 동료들이 그립고, 부럽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사람의 일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