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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알자스(Alsace)에서 온 엽서

by 답설재 2015. 8. 21.

 

 

 

 

알사스(Alsace)에서 온 엽서

 

 

 

 

 

 

 

 

 

 

 

  그 날 아침, 나는 학교에 매우 늦었다. 게다가 아멜 선생님께서 동사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 야단맞지나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문득 수업을 빼먹고 들판으로 놀러나 다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날씨는 따뜻했다.

  산기슭에서는 티티새가 지저귀고 제재소 뒤쪽의 리페르 들판에서는 훈련을 받고 있는 프로이센 병사들의 군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느 쪽이든 문법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유혹을 꾹 참아 내고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알퐁스 도데가 지은 「마지막 수업」의 첫 장면입니다.1 알사스 로렌 지방이 독일에 점령되어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사 시절에는 초등학교 국어책에도 나왔습니다. 뤼브롱 산 양치기 소년의 주인 집 아가씨 스테파네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별」은 학창 시절의 국어책에서 읽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가르치기가 쉬웠습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이꼴이 난다!"는 그 내용, 그 분위기 때문인지 책을 펴기만 하면 아이들도 벌써 숙연한 표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멜 선생님의 부탁이나 꾸중을 나타낸 부분은 내가 아이들에게 누누히 말하고 싶은 것을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서 "이것 봐, 이놈들아!" 할 것도 없었습니다. 가령 이런 부분입니다.

 

 

  "프란츠, 너를 야단치지는 않겠다. 너는 이것으로 충분히 벌을 받은 셈이다.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생각했지. '아, 아직도 시간은 충분해. 내일 공부하면 되는데 뭐.'라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언제나 교육을 다음날로 미루는 것이 우리 알자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이었다. 지금 저 프로이센 사람들에게 비난을 들어도 어쩔 수가 없구나. '뭐라고? 너희들은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프랑스 사람이라고 우겨 댈 자격이 있냐! … 프란츠, 너 혼자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깊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너희들의 부모님도 (……)"

 

 

  이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까지 매우 극적입니다.

 

 

  선생님은 칠판을 향해 돌아서서 분필 하나를 집어 들고 온 힘을 다해 될 수 있는 한 아주 크게 썼다.

 

  프랑스 만세!

 

  선생님은 그대로 벽에 얼굴을 기대셨다. 그러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힘없이 우리들에게 손짓하며 말씀하셨다.

  "이제 끝났다…… 돌아가거라……"

 

 

 

 

 

 

  '벽이며 지붕이 곱구나!'

  엽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캐나다, Wild Rose Country의 헬렌님이 여행 중에 보내준 엽서입니다.

 

  회색을 중심으로, 아주 짙은 회색이거나 연한 회색이거나 그 중간이거나 다른 색을 조금 섞거나, 어쨌든 회색을 벗어나는 것을 너무나 어려워하는 것 같은, 우리 동네의 이 우중충한 모습보다는 '이렇게!'(색종이처럼, 크레파스처럼, 무지개처럼……) 꾸며 놓고 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색 계열'은 지는 걸 싫어하면서도 눈에 띄는 건 싫어하는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사실은 내가 생각을 잘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 무수한 회색 건물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건축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아주 아늑하고 산뜻한 것'인데 나 혼자서 '우중충한 것'이라고 느끼는, 말하자면 그렇게 바라볼 줄밖에 모르는 불쌍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알자스, 따뜻하고 아늑해 뵈는 저곳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념도 다 다르고, 까칠하게, 한판 붙을 기세인 사람이 걸핏하면 눈에 띄어 괜히 편안하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도 궁금했지만 단념하기로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피곤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 알퐁스 도데 원작, 박명희 엮음, 김현정 그림『마지막 수업』(지경사, 2012 중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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