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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김정욱 교수의 '내가 본 한국 교육'(Ⅰ)

by 답설재 2014. 12. 30.

 

 

김정욱 교수는 올해 여든 몇입니다. 자신의 나이도 적은 게 아니라고 여겨질 때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위축되는데, 저분인들 때로 그렇지 않으랴 싶어서 "올해 몇입니까?" "내년에는 어떻게 됩니까?" 하고 꼬치꼬치 묻지 말고 올해나 내년에나 그냥 여든 몇이라고만 알아두기로 했습니다.

 

그런 분이 원고를 쓰겠습니까? 전혀 안 쓴답니다. 과학에 관한 글이건 뭐건 안 쓴다는 선언 같은 얘기를 이미 들었습니다. 저 같아도 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헛일삼아 설설 작업을 걸었습니다. 우리 교육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을 때마다 그랬습니다.

"아, 지금 그런 얘기를 글로 나타내면 참 좋겠는데……"

그렇게 말할 때의 내 표정이 볼 만했던지, 지난봄 어느 날 불쑥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언제까지 써달라고 기한을 정해 놓고 조르지만 않는다면 한번 써볼게요."

 

 

 

 

한 번도 조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두어 번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다 되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천신만고 끝에 나온 원고였는데, 그 원고를 겨우 무가지(無價紙, 꽁짜로 주는데도 읽는 이가 거의 없는 책) 『교과서연구』 78호(2014.12.1,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계간지)에 '턱' 실었습니다.

"읽어본 사람들이 정말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김 교수를 만나 저녁식사를 할 때는 그렇게 호기를 부려 말했지만, 야단은 무슨, 편집위원 말고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받은 김 교수의 글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이 글은 분명히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읽는 이가 없으니 좋으면 뭘 하겠습니까?

 

『교과서 연구』라는 책은,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교육행정기관에 한 부씩 무료로 보내줍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이들이 참 많은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에는 이와 같은 책들이 수없이 많이 가지만, 우선 교과서와 EBS 수능교재 같은 책이 많기 때문인지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그리 많은지 모를 일입니다. 평생을 학교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저도 잘 모를 일입니다.

"교과서 연구? 그게 뭐지요? 그런 책이 있었습니까?"

공짜 책을 만들어 보내야 하는 곳이 하필이면 학교라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학교는 교과서 외에는 읽지 않는 곳입니다.

 

 

 

내가 본 한국 교육 (Ⅰ)

 

 

 

 

 

김 정 욱

(전) 존스홉킨스대학 물리학 교수

고등과학원 초대 원장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공부를 한 기억은 전혀 없고 놀던 생각 밖에 없다. 산과 냇물이 너무 좋아 미친 듯이 놀러 다녔고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는 물론 휴식시간에도 운동장에서 많이도 뛰어놀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많이 놀았고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와서 다닌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역시 그랬다. 오랜 세월이 흘러 미국에 있을 때였다. 어느 공항에서 한국인 친구와 조우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다가와 "운동장에서 함께 많이 뛰어놀던 그 친구 아니냐?"며 반가워했다. 자세히 보니 우리는 중학교 동기였다. 그 정도로 나는 뛰어노는 것과, 자연과 자유를 좋아했다. 6.25전쟁 때도 그렇다. 그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탓에 고생은 많이 했지만 인생 공부는 무척 많이 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자주 지금의 한국 학생들과 나 자신을 비교해보곤 한다.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는 길에서는 누리과정이나 유치원에 가는 어린이들을 많이 본다. 옷차림이나 장비들이 정말 눈 부실 정도다. 한국은 참 좋아졌다. 그렇지만 '이 어린이들이 가는 곳에 안심하게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 제대로 있나?', '이 나이에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배우나?', 그리고 '자격이 있는 선생들이 가르치나?' 등 걱정이 많다. 자연 속에서 한참 뛰어놀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즐기면서 지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서너 살 때부터 누리과정과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사회적 변화와 요구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어쩐지 걱정이다. 이 과정을 위한 교육 예산 문제로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왈가왈부하는 것도 그렇고, 그 나이에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는데, 정작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과연 그 연령에 맞는 여러 가지 교육을 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그저 후에 좋은 학교, 즉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쟁에서 빠질 수 없고 뒤질 수 없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이때부터 치열한 경쟁의식과 부모들의 소원이 너무 지나쳐 허영으로까지 변해가는 '한국 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이때부터 명문대 입학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젊은 교수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할 때 자녀가 중학교 1학년인 교수와 중학교 3학년인 교수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다른 교수들은 "저게 바로 학부형 토크"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 일류대에 갈 수 있다느니, 우리 아이는 큰일이라느니, 그런 게 화제였다. 아니, 아직도 중학생들이면 좀 놀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 "몇 등 몇 등"만 따지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그런 교수들의 부인들은 벌써부터 선생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에 드나든다고 한다. 하기야 당대에 그렇게 유명했던 천재적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도 딸 때문에 수학 선생을 만나러 학교에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딸이 수학 문제를 선생이 푸는 방법으로 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고 오자 왜 야단을 쳤는지 따지러 간 것이었다. 정답은 하나지만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수학이다. 선생의 자존심과 파인만의 고집 때문에 이 딸아이는 수학교실을 두 번이나 옮겼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선생을 찾아가는 학부모가 한국에도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도 잘 봐달라고 만나는 것만은 아니길 바란다.

 

얼마 전 아미라 빌리하겐(Amira Willighagen)이라는 9살의 네덜란드 소녀가 그 나라의 전국 노래자랑에서 선풍적인 인기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심지어 새로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탄생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이 아이는 여기저기에서 받은 상금으로 기부를 했는데, 놀 곳이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운동장을 만드는 데 써달라고 했다. 아미라는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좋았고 중요했기에 불우한 아이들에게 뛰어노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중요하지 잔재주나 영어를 가르치고 너무 일찍부터 불필요한 경쟁심을 야기하는 것은 절대로 옳은 일이 아니다. 우리의 개성 혹은 인격(personality)이라는 것은 수학, 국어, 영어 등 지식 획득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단계적인 자연과의 교감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여기에는 지름길이 없다. 세 살 아이에게는 세 살에 맞는 교육이 있고, 열 살 아이에게는 열 살에 맞는 교육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은 우리 아이는 특수해서 영재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한국교육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 천재라는 아이들을 본다. 간혹 천재적인 창의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지식획득에 비상한 재주를 가진 것을 자랑하는 아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며 유명했던 김○○ 군도 이런 사례이며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이 유명했던 그 어린 시절보다 오히려 더 행복하리라. 어렸을 때의 일들은 부모의 허영심의 산물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교편을 잡고 있던 존스홉킨스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영재교육과정(Talented Youth Program)을 시작한 줄리앙 스탠리(Julian Stanly)라는 교수가 있었다. 그의 부인도 나와 함께 물리학과에서 일하고 있어 서로 잘 알고 지냈다. 줄리앙은 심리학자로서 이른바 ‘영재들’이 과연 어떻게 성장하게 되는지 연구하기 위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됐으나 그가 시작한 그 프로그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학 입학의 자료로 쓰기 위해 고등학교 2, 3학년 학생들이 치르는(지금은 한국에서도 칠 수 있는) SAT의 수학과 영어(verbal) 점수의 합계가 12세 이전에 1200점 이상인 학생들을 우선 '영재'로 정의해 놓고 여기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전국에서 선발해 여름학교를 시작으로 교육을 병행하면서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이 연구의 결과는 이러했다. 이 과정을 이수한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박사 학위(Ph. D.)를 1~2년 빨리 취득했으나, 몇 명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 후의 성과('성공'이라 할까?)에서는 특이한 차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론은 간단한 것이다. 빨리 배운다고 빨리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1~2년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기입학, 조기졸업, 모두 큰 의미가 없다. 영재는 일시적으로 일직 핀 꽃이라면, 일찍 피고 오래가는 꽃이 천재다. 꽃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모두가 장미꽃일 필요가 없다. 요즘은 호박꽃의 인기가 대단하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최고급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 김정욱 교수의 '내가 본 한국 교육' (Ⅱ)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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