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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오감으로 읽기'

by 답설재 2014. 10. 8.

 

용인 성서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를 공부하며 6·25 전쟁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최 선생님!

어제 저녁에 EBS 다큐프라임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최 선생님 얼굴이 비쳐서 얼른 똑바로 앉았습니다.

「슬로리딩, 생각을 키우는 힘」 "2부 오감으로 읽다"

'최영민 선생님은 여전히 읽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구나!'

 

모두들 바쁘다는데, 최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용인 성서초등학교는 '슬로리딩'이라니! "사실은 우리도 바빠요!" 혹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러 장면들에서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다 괜찮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왜 바빠야 하는지, 이른바 '진도 나가기'에 바쁘고, 그러므로 머리도 가슴도 복잡해서 아이들을 돌아볼 여유도 없다고들 합니다. 그럼 왜 있는지, 누굴 위해서 있는지……

그런데도 최 선생님네는 "오감으로 읽다"를 주장하고 있으니, 놀랍고도 다행스러웠습니다.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답적인 이야기는 필요없을 것입니다. 연전에 앨빈 토플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세계의 이런저런 신문들을 수백 페이지씩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읽는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것도 "읽어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경우 "읽는다"는 것은 하필 책이나 글, 문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저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 친구의 얼굴을 살피는 것도 다 읽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이 나면 어떤 음식을 준비하겠는가?"라는 주제로 학습하는 장면?

 

 

 

우리가 함께했던 예전의 그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자"는 이야기들을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래, 저건 입체적 읽기야! 당연한 거지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거지. 몸으로 읽는 거지.'

'교과서를 벗어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니……'

'전주의 서당에까지 갔구나. 그때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갔었지.'

'저 아이들은 살아가는 것과 같은 형태로 배우고 있구나.'

 

최 선생님!

찬란한 가을날입니다.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