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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창의성 교육 이야기

by 답설재 2014. 8. 12.

 

 

 

 

 

창의성 교육 이야기

 

 

 

 

 

  <이야기 1>

 

 

 

 

 

 

  어느 신문에서 "수능 문학 문제가 '5지 선다형' … 무슨 창의력 생기겠나"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세영 시인(학술원 회원)을 인터뷰한 내용입니다.1

 

  '그래, 맞아! 5지선다형으로는 창의력 신장이 거의 불가능하겠지.'

  '5지선다형으로 유리한 건 뭘까? 섬세함? 꼼꼼함?'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학 문제를 5지선다형으로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대학교수들의 주관식 출제를 우리 사회가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깁니다.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답이 없어요. 단답식으로 물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용 자체보다 작품을 보는 학생의 상상력, 사고력을 테스트해서 점수를 줘야 합니다. 이게 말하자면 주관적인 것이죠. 교수가 그렇게 판단했을 때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이죠. 왜 이것은 정답이 아니냐, 왜 내 점수는 이러냐, 이런 불평을 견디질 못하는 거예요. 사실 교수보다 장관, 대통령이 버티질 못해요. 자기 자리를 보존하려다 보니 말썽 없이 누구나 공인하는 답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학시험이 수학이나 물리학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문학을 소재로 한 자연과학을 묻고 있는 것이죠. 일선 고교에서는 아이들을 서울대에 보내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공부를 시키고, 결국 우리 한국의 모든 아이들은 문학교육을 안 받는 겁니다. 창조력 결핍이 한국 사회의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죠. 요즘 인문학이 천시받는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문학교육부터 안 돼 있는 것이죠.”

 

 

  이런 교육으로는 창의력을 기르기가 어렵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그걸 고치는데 나서는 학자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거기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고, 그냥 지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지식 주입식 교육을 폐지하고 창의력 교육에 중점을 두는 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든지 억울한 누명을 써야 한다든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든지…… 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야기 2>

 

 

 

 

 

  한국에서 세계수학자대회2가 열린답니다. 한국고등과학원에서 근무하는 황준묵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첫 기조강연을 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기조강연을 하는 20명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는 것에 비교된다고 합니다.

 

  그저께 아침에 전철역으로 나가는 버스에서 그 고등과학원을 세우고 초대 및 2대 원장을 지낸 세계적인 물리학자 김정욱 교수를 만났습니다. 버스가 전철역에 닿을 때까지의 10여 분 동안 필즈상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은 벌써 서너 명이 받았는데(분명히 들었는데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우리는 아무도 받지 못했답니다.

 

  필즈상은 40세가 넘으면 받을 수 없답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이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그 상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수학교육은 철저히 토론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문제를, 틀리지 않고, 남보다 먼저 풀어야 하는 이런 수학교육으로는 올림피아드 대회나 피사(PISA) 같은 데서는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수학에서 요구하는 창의력은 기를 수 없고, 학교를 졸업하고 연구를 시작하면 이미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왜 같은 문제를 이렇게 많이 풀어야 하느냐?" "왜 공식대로 빨리 풀어야 하느냐? 다른 방법으로 내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풀면 왜 안 되느냐?"고 화를 내는, 고집을 피우는 아이를 알고 있습니다.

  학원에서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는 이 아이에게 자기네들이 시키는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으면 결코 특목고를 가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답니다. 그럼 일반고를 가도 얼마든지 좋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반박해 주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아이에게 지금부터 학원을 다녀서 특목고를 가라고 해야 합니까?

 

  저 시인은 문학을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가르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 비판이 정당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수학이나 물리학도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렇게 가르쳐서는 필즈상도 못받고 만다는 것이 김정욱 교수의 주장입니다. "주장"이라고는 했지만, 김 교수는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잔잔한 음성으로 이야기합니다.

 

  잔잔한 음성으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한다고 해서 심각하게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사실은 그건 그분으로부터 한두 번 들은 얘기가 아니고,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이야기 3>

  

 

 

 

 

  어느 연수회에서,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교육연구기관에서 근무하고 퇴임한 분이 강의 중에 "국어나 사회 과목을 수학이나 과학 과목처럼 정답을 찾는 교육을 시켜서야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신념 중 한 가지인듯 힘주어 이야기했습니다.

 

  그 학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정답을 찾는 공부가 주가 된다는 생각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거의 지배적입니다.

  그런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니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창의성 교육은 교장이 전교생 앞에 나서서 "얘들아! 너희들은 부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훈화를 하거나 학교 건물에 커다랗게 "창의적인 인간 육성!"이라고 써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서 무슨 놀이나 작업을 시킨다고 해서 길러지는 능력도 아닙니다.

  수학과 과학 영재를 모아놓고 그 아이들에게만 창의성 교육을 한다면, 그것도 웃기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시인이 될 아이, 소설을 쓸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 건 알아서 하면 됩니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가 되면 일시에 "우리나라 선수도 받아야 한다!" "받을 때가 됐다!"고 주장하면 됩니까?

 

  수학, 과학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영재들만 그런 교육을 받는다면, 만약 교육을 받지 않으면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게 된다면, 그럼 영재가 아닌 사람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습니까?

  영재들이 장차 둔재들을 다 먹여 살리니까, 영재 한 명이 수십 만명을 다 먹여 살리게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창의성이 그런 것입니까?

 

 

 

 

 

 

 

 

 

 

 

  1. 문화일보, 2014.7.18., 31~32쪽, 주말섹션 LIFE & Story. [본문으로]
  2.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SEOUL ICM 2014;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s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