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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서광일 「웃는 여자」

by 답설재 2022. 10. 19.

 

 

 

 

웃는 여자


                                                      서광일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몸에 힘을 꽉 준다
스킨 로션이 터지고 매니큐어가 쏟아진다
화장대 거울에 비늘 같은 금이 갔다
팽개친 옷들로 장롱은 뒤범벅이다

하루 종일 웃었다
너무 지쳐 오는 길에 한잔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개 안 되는 문장의 주어는 고객님이다

CCTV
그 속에서 웃고 있을 자신을 상상한다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 앞에는
쓸데없이 사람들이 많다

문을 잠그고 창을 걸어 닫고
그녀는 욕을 하며 집히는 대로 집어 던진다
침대 시트에 피가 흥건한 날도 있었다
거울 속에서 웃고 있는 쟤는 누굴까

어차피 전부 닦고 치워야겠지만
헝클어진 화장지처럼 그녀는 웃었다
울었다 선풍기 목을 부러뜨렸다
휴대폰을 박살냈다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8평 반 지하에서 조촐한 파티를 한다
거울 조각 속 수많은 그녀가 운다
웃는다 마스카라처럼 흘러내린다

내일은 모처럼 쉬는 날이다



―――――――――――――――――――――――
서광일 1973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등단.

 

 

 

억지웃음은 좋은 것일까, 다만 필요한 것일까?

억지웃음을 웃지 않는 '잘못'을 숨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강연을 하는 사람도 선풍을 일으키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억지로라도 웃어야 건강하고 행복해진다는 주장을 하는 강사들과 섞여서 사람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겠지?

화요일에는 화가 나도 웃어야 한다는 교수와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는데 나와 거의 동갑이었던 사람 좋은 그는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억지웃음을 웃어도 건강에 좋도록 작용하는 바보 같은 내 뇌만은 정신을 좀 차리면 좋겠다.

 

*『현대문학』 2013년 10월호에서 옮겨 써 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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