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유(臥遊) / 안현미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2012년 11월 2일, 비감어린 그 저녁에 이 시를 옮겨적었는데 나는 여전합니다.
다만 내가 정말 한지에 연서를 쓸 수 있겠는가 싶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바스라지는 것일까요?
그날 장석남 시인이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에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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