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시간의 여울』(현대문학, 2013)
아침, 집 앞의 길바닥에 개구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내장이 터져 파리가 들끓고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이미 개구리는 전병이 되어 납작하게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마음에 걸려 그곳에 나가 보니 이미 아무것도 없고, 그 위치조자 확실치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밤, 끊임없이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잠이 깨어, 희뿌연 불빛에 떠오른 흰 캔버스를 멍하니 바라보며 밤을 새웠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어언 그 개구리에 대한 것은 벌써 잊어버렸을 터인데도, 이따금 까닭도 없이 한밤중에 일어나 멍청하게 흰 캔버스를 바라보는 버릇이 들었다.
「개구리」 전문
이우환의 에세이 81편을 실은 책입니다.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먼 유년시절의 추억, 청소년기까지를 보낸 한국에의 상념, 직업상 사시사철 돌아다니는 여행지에서의 체험, 일상의 시간, 공간 속에서 깨달은 것, 그리고 화가, 조각가로서의 느낀 점'을 쓴 글들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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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만 옮겨 놓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것으로 할까 망설였습니다. 우선, 나중에라도 이우환이 떠오를 만한 작품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긴 글은 13쪽이나 되기도 하지만(「고향」), 짧은 글도 여러 편이고, 혹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거의' 많이 바쁘니까 그 짧은 글들을 대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는 「뱀」이나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도 비교적 긴 편이어서 옮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푹푹 찌더니 매미 소리도 나뭇잎의 움직임도 멎었다. 열린 창가 하얀 침대 위에서, 가만히, 기다린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드디어 바람 한 점 없는 우주의 찰나가 들이마신 숨결과 딱 겹친다. 무언가가 땀과 함께, 일제히 뿜어 나온다. 몸이, 침대가, 방째로 끝없이 녹아 나가, 이윽고 모든 것이 먼 바다가 되었다.
「여름날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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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글에서도 잘난 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내어서도 좋았습니다. 읽는 내내 대가(大家)인 그와 함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는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했습니다.
'예술가란 이런 사람이구나', '시인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한국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사물과 사회현상은 이런 눈으로 봐야 보이는 것이구나(날카로우면서도 한없이 정겨운 「남대문 시장」)' …… 나는 정말 그와 함께 생활한 그간의 며칠이 행복했다는 걸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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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우환 화백의 공통적인 롱런 비결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 "깐깐하고 경직됐다"며 비판 받았던 두 젊은이는 확고한 철학과 신념에 따라 살아와서 지금은 존경받는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2
마지막 한 편은, 그의 그런 면을 볼 수 있는 글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한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일본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정말 한국은 멋진 나라로군요." 이것저것 너무 칭찬을 해대는 바람에 나는 기분이 상해, "아니, 한국은 아직 멀었어요" 하고, 그녀가 칭찬하는 부분을 전부 뒤집어 부정했다.
또 언젠가 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일본의 정치가를 만났는데, 그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은 어쩔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네." 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엉터리 같은 소리 집어치우시오!" 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그이 말에 일일이 대반론을 펼쳤다.
언젠가 일본에 온 한국의 실업가가 나에게 말했다. "일본은 잘 꾸며진 나라군요." 그래서 나는 화를 내며 "이렇게 융통성 없는 나라는 없어요." 하고 일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또 언젠가 한국의 한 문학자가 일본에 와서 나에게 말했다. "일본은 알면 알수록 싫어지는 나라예요." 그래서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등감의 반등 같은 소리 하지 마시오"라고 일본을 변호하며 그를 혼냈다.
나의 이런 대응을 언제나 보고 있는 아내는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자기 나라를 칭찬해도 마음에 들지 않고 깎아내려도 성을 내는군요. 게다가 일본에 대해서도 자신은 마구 욕을 해대면서 한국에서 온 사람이 칭찬하거나 깎아내리거나 하면 어느 쪽에도 화를 내며 반대하죠. 도대체 뭐라고 해주면 직성이 풀리겠어요?"
과연, 듣고 보니 나는 자신이 취하고 있는 태도가 불가해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정말로 무슨 소리를 들어야 기쁘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난처한 일이다. 어쩌면 내 입론立論은, 분열병자처럼 한평생 어느 쪽으로 굴러도 화를 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입론立論」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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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에세이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해보라고 한다면,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늦긴 했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읽으라면 당장 그렇게 하겠지만, 그런 뜻에서가 아니라 옮겨두고 싶은 글들이 많아도 그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이 책은 잘 보이는 곳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아무 소리 않으면 번역본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이우환李禹煥3
미술가. 1936년 경남 출생.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중퇴 후 도일. 1961년 니혼 대학 철학과 졸업. 파리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 출품. 파리 죄 드 폼 미술관, 서울 삼성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 호암상 예술상(서울), 세계문화상 회화상(도쿄) 수상 전 파리 에콜 데 보자르 초빙교수, 현 도쿄 다마 미술대학 명예교수.
작품집으로 『LEE UFAN』(美術出版社 및 都市出版, 일본), 『Lee Ufan』(ACTES SUD, 프랑스) 외 다수. 저서로 일본어판 『만남을 찾아서』(서울, 학고재),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 시집 『멈춰 서서』(이상 3권, 한국, 현대문학)를 비롯해 영역판 『The Art of Encounter, Lee Ufan』(Lisson Gallery London)과 불어판 『L'art de la résonance Lee Ufan』(Beaux-arts de Paris éditions)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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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33쪽, 지은이의 말 중에서.
2. 매일경제 2014.9.23. 37면, '교황과 이우환의 롱런 비결'. - 이들이 노년에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남다른 열정과 신념, 노력이 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다. 둘 모두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확고하기로도 유명하다. 다만 이들의 고집은 꼰대라는 불통의 방식을 따르지 않기에 젊은이들도 귀를 기울인다(기사의 일부).
3. 에세이집 날개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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