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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廣中平祐) 『학문의 즐거움』

by 답설재 2014. 9. 10.

히로나카 헤이스케(廣中平祐)

『학문의 즐거움

박승양 옮김, 김영사, 2000, 1판28쇄

 

 

 

 

 

 

 

『학문의 즐거움』!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내가 바로 이 책을 내려고 생각하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혹은 제목의 아이디어를 빼앗긴 것처럼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쓴 책이라도 되는 양 이 책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습니다. 책을 선물하는 것은 품위 있는 일이고 상대방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될 것으로 여기며 생색을 내던 때였습니다. 그 착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그래서 5~6년에 걸쳐 이 책을 아흔 권 혹은 백 권쯤은 샀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책을 받아간 사람을 단 한 명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그들에게 미안해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나에게서 이렇게 좋은 책을 받아간 그들 중 단 한 명도 "그때 그 좋은 책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잊을 길 없다"든지 "겨우 5500원짜리 책이지만 큰 감명을 받았다"든지 하는 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다 그만두겠습니다. 이 책을 쓰레기로 버린 사람도 있을 것 같고('학문은 무슨…… 개뿔! 웃기고 있네'), 그렇다면 잘난 체하고 그 책을 선물한 나 자신은 버려질 것도 없이 아예 잊혔을 것이므로 더 이야기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억울하다면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이 책에 대한 내용으로 쓴 편지를 발견하고 다시 싣고 싶었을 뿐입니다.

'편지'……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그 학부모들에게 이른바 '오프라인'으로 100번의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이 블로그 이름 <파란편지>도 그때 그 '엄마들'이 지어준 것입니다. "엄마들"이 몰려와 교장실 창문 너머로 "오빠, 오빠" 하기도 했는데, 아득한 일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한, 이 세상의 멋있는 교장이 되고 싶었었는데…………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학문의 즐거움'

 

 
일간신문의 교육에 관한 섹션은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가 싶어서 최소한 그 제목이라도 보려고 노력하며 차곡차곡 모아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니 사실은 별 게 아니고 대체로 상식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취재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그중에는 더러 올바르지 못한 내용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것을 읽기보다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그것만 살피면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겠지요. 학문이나 공부에나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 그렇게 하면 당장 성적이 오르거나 머리가 좋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관점을 가진 제가 『학문의 즐거움』(히로나카 헤이스케, 방승양 역, 김영사, 1992)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학문의 즐거움'이라니! 평범한데도 흔히 볼 수는 없었던 신선함으로, 얼마나 멋진 제목입니까? 저도 몇 권 책을 내었고, 그 책들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을 경험한 처지에 남의 책을 선전해주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2000년 초에 그 책을 28쇄나 찍은 것을 발견하고 '아, 내용이 훌륭하거나 제목이 멋진 책은 잘 팔리는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사실은, 내용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일본 수학자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 수상자입니다. 이 상은 캐나다 수학자 필드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상으로 4년에 한 번씩 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쌓은 학자에게 주는 아주 영예로운 상입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답니다. 열세 명의 자식을 둔 그의 아버지는 "대학은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면서 방과 후에 집에 있는 그를 보면 곧 밭으로 끌고 나가기 일쑤여서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서 책을 읽기도 했답니다. 또, 그의 어머니는 "다치더라도 안 죽으면 된다"는 것이 첫째 기준이었으므로 "성적은 안 좋아도 학교만 잘 다니면 된다. 훌륭한 사람은 못 되더라도 남을 해치거나 가족을 괴롭히지 않으면 된다. 어쨌든 최악의 사태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답니다.

그러한 처지의 그가 어머니에게서 배운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생각하든지 생각하는 그 자체는 뜻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좀 실감 나게 말씀드리기 위해 그 책에서 직접 옮겨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곤 했다.
다섯 살 때라고 기억되는데 목욕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물속에서는 왜 손이 가벼워지지요?"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인텔리와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학문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로서
나의 질문에 대답할 정도의 지식이 없었다.
"목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나오지요?"
"코로 어떻게 냄새를 맡지요?"
나의 여러 가지 질문에 어머니는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으셨다.
그러나 "모르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그런 시시한 건 생각하지 않아도 돼"라면서 화를 내는 일도 없으셨다.
"글쎄 왜 그럴까?" (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답이 안 나올 때는 어머니는
동네에 있는 신사(神社)의 신주(神主 : 관리인)에게 데려가거나,
친분이 있는 의사에게 찾아가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어머니는 그에게 체험을 통해서 생각하는 기쁨을 가르쳐 주었고, 이것은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 되었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저에게 눈에 번쩍 띄는 부분은 「깊이 생각하라」「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움이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이때야말로 깊이 생각하는 힘이 요구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혹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깊은 사고력뿐"이라고 했습니다. 또, 단시간에 문제를 푸는 사고방식의 훈련에 치중하고 '오랜 시간 숙고하는 사고방식'을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환경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교육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망각 忘却)은 오히려 소중하며, 그렇게 잊어버리면서도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학문(공부)은,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며,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이 즐거움, 기쁨을 맛보기 위해' 학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E대 석좌교수인 분이 지난 과학의 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무지하게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학문'까지는 아니라면,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없다"
"지금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우리가 오히려 방해를 했거나 잘못 가르쳐서 부정적인 경험을 가진 아이일 뿐이므로 우리는 우선 그 일부터 사과하고 고쳐주어야 한다."
 
 

2006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