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김재천 옮김, 소담출판사, 1992
나도 밤낮 그 박물관에 가곤 했었다. 미스 에이글팅거라는 선생이 있었는데, 그분이 우리를 토요일마다 그리고 끌고 다녔던 것이다. 동물을 보는 때도 있었고 인디언들이 옛날에 만들어 놓은 물건을 보는 때도 있었다. 도자기라든가 짚으로 엮은 바구니, 또는 그 밖의 다른 물건들이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는 행복해진다. 지금도 그렇다.(177)
박물관의 현장학습을 행복하게 떠올리는 사람에게는 뭐라도 좀 주고 싶어집니다. 1993년이었던가? 교육부에서 일할 때 현장학습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백 명이 모인 회의장에서 어느 지역 장학사로부터 업무에 지장이 많다면서 학생들을 도청에 보내지 말라는 공문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혀서 그러거나 말거나 자꾸 가면 그 도지사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대답해주던 일이 떠오릅니다.
저렇게 회상하고 있는 홀든 코울필드(16)는, 명문 사립고등학교 펜시로부터 퇴학을 당해서 뉴욕의 집에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5과목 중 4과목에서 낙제를 했고, 펜시는 퇴학을 당한 네 번째 학교였습니다. '학교'는 그에게 이런 곳입니다.
펜시 고등학교란 펜실베니아 주 어거스타운에 있는 학교인데, 아마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광고란이라도 보았을 것이다. 수많은 잡지에다 광고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광고에는 늘 말쑥한 청년이 말을 타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진이 실린다.
이건 마치 펜시 고등학교에선 언제나 폴로(polo : 4명이 한 조가 되어 말을 타고 공치기) 경기를 시키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이제껏 펜시 고등학교 근처에서도 말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사진에 나온 그 청년 바로 밑에는 '1888년 창립 이래 본교는 항상 우수하고 명철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청년들을 양성해 왔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건 어이없는 말이다. 양성이라니 원! 사실 펜시도 다른 학교와 가르치는 것이 조금도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우수하고 명철한 청년? 그런 것은 그곳에서 본 적이 없다. 아니, 두 명 정도 있을까? 많다고 해야 고작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펜시 고등학교에 오기 전부터 우수하고 명철한 소년이었을 것이다.(9~10)
나는 그 편지를 누군가에게 주어 피비에게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계단을 올라가 교장실로 걸어갔다. 쪽지는 아무도 뜯지 못하도록 열 번이나 접었다. 학교라는 곳에선 아무도 믿을 놈이 없는 법이다.(287)
♬
학교뿐만 아니고 그가 보는 교장이나 선생들도 당연히 그 수준입니다.
내가 엘크톤 힐즈(전에 쫓겨난 학교)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는 엉터리 같은 놈들만 우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뿐이다. 정말 우글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하즈라는 교장이 있었는데 이 교장은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난 최대의 엉터리였다. 서머 교장(펜시의 교장)보다 몇십 배나 더한 얼간이였다. 예컨대 일요일이 되어 학부모들이 차를 몰고 학교를 찾아오면 하즈 교장은 일일이 악수를 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지독히 상냥하게 굴었다. 하긴 간혹 우습게 보이는 학부모들에겐 그러지도 않았지만. 우리 반 친구의 부모와 악수하는 꼴은 정말 모두들 보았어야 했다. 말하자면 어떤 학생의 어머니가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자일 경우, 혹은 학생의 아버지가 걸친 양복이 어깨가 넓은 구형(舊型)이거나 남루하고 게다가 검고 흰 줄무늬가 들어 있는 구두를 신고 있을 경우, 그 교장은 간단한 악수를 하고는 억지웃음을 던진 채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는 다른 학부모들에게로 옮겨가 무려 반시간 정도나 지껄이곤 했다. 그건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 생각만 해도 나는 미칠 지경이다. 그런 꼴을 보면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27)
선생은 그 답안지를 마치 더러운 똥이라도 만지듯 다루었다.
「우리는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수업시간에 이집트인을 공부했었지. 자네는 자유 논문 문제에서 이집트인을 주제로 택해 썼더군. 그런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디 한 번 들어보겠나?」
「아니, 괜찮습니다.」
나의 대답에 개의치 않고 선생은 읽고 있었다. 선생이 무엇이건 할 때 그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선생들이란 그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니까.(23)
♬
홀든 코울필드의 눈에는 세상의 모습이 그 이면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 보이는 것입니다. 온통 시시하고 멍청하고 얼간이고 엉터리고 치사하고 지저분하고 쥐새끼 같고 더러워서 눈뜨고 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울하고, 자신은 슬프고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혐오하고 멸시하는 것들은, 범죄나 비윤리적인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속상한 것은 바로 물질적인 가치만 내세우는 사람들, 가슴에 사랑이 없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는 그 가식입니다. 기숙사 친구들, 함께 데이트한 소녀들, 교장, 역사 선생, 영화배우, 엘리베이터 보이, 창녀, 바텐더, 변태적인 선생……
그가 찾는 것은 맑고 깨끗한 사랑입니다. 그는 여동생 피비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무튼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본단 말야. 몇 천 명의 어린애들만이 있을 뿐 주위에는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럴 때 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런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250~251)
♬
인간에 대한 혐오와 환멸에 지친 홀든은, 멀리 서부의 "어느 주유소에서 차에 휘발유를 넣어주거나" 하며 "누구하고도 쓸데없고 어리석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좋은 "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며" 은둔하려고 했지만, 천사 같은 여동생 피비가 무작정 따라나서는 통에 현실 세계를 떠날 수 없는 한계를 깨닫게 되고, 함께 집으로 들어가 입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흘간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소설도 끝나게 됩니다.
그는 인간의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다가 신경쇠약증을 앓는 소년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곳 병원에 있는 정신분석 전문의가 이번 9월부터 학교에 돌아가면 열심히 공부하겠느냐고 자꾸만 묻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처럼 어리석은 질문은 없는 것 같다.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야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긴 하지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다.(304)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내가 여기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내 곁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예컨대 스트라드레이터와 애클리마저 그립다. 그놈의 모리스 녀석도 그립다. 웃기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을 하면 모든 인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304)
♬
이건 욕심입니다. 홀든을 "귀여운 작문의 천재"라고 부르는 앤톨리니 선생이 퇴학을 당한 그를 불러서 해준 이야기를 옮겨두고 싶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옮겨두고도 또 까맣게 잊어버리고 어느 날, '저 책을 한번 읽어볼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앤톨리니는 알쏭달쏭한 선생입니다. 이야기하는 내용도 그렇지만 잠자리에 든 홀든의 침대에 다가와 몰래 '그놈의 대가리를 만지작거린' 변태입니다. 먼저 옮기는 것은 홀든이 듣기에, 혹은 우리가 듣기에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세 가지이고, 그다음은 생각해볼 만한 것 세 가지입니다.
「…… 타락해 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지 부딪쳐서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거든.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 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기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법인데, 네가 바로 그런 유의 사람이야. ……」(270)
「너는 아무 가치도 없는 일로 고귀한 죽음을 감수하려는 것이 분명하거든.」(270)
「…… 뷜레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것이야. 이렇게 말했구나. …(중략)…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라고.」(271)
「…… 일단 그 빈슨 선생과 그와 같은 선생들의 과목에서 급제점을 따고 나면 너의 가슴에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질 지식에 너는 점점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거야. 물론 자신이 그것을 바라고 그것을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조건이 따르지. 무엇보다도 너는 인간 행위에 의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그것을 깨달으면 흥분할 것이고 자극을 받을 거야. 네가 현재 겪는 것과 똑같이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히도 그 중 몇몇 사람들은 자기 고민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너도 바라기만 하면 거기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그리고 장차 네가 남에게 줄 것이 있다면 네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네게서 배울 수 있다는 거야. 이것이 이름다운 상호 원조가 아니겠니? 그런데 이건 교육이 아냐. 역사야. 시야.」(272~273)
「교육이 있고 학식이 있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냐. …(중략)… 내가 말하려는 것은 교육이 있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우선 밑천으로 삼을 수 있는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경우는 불행히도 드문데… 그것은 단지 발랄한 재능과 창조력만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그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십중팔구 그러한 사람들은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점이야. 알겠니, 내 말을?」(273)
「학교 교육은 그 밖에도 도움이 되지. 어느 정도까지 이것을 계속하면 자기 머리의 크기가 얼마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으며, 또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지 않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일정한 크기의 자기 머리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활용해야 하는가를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을 일일이 시험해 보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을 절약시켜 주지. 자신의 진정한 치수를 알게 되며 거기에 따라 자기 머리를 활용하게 되지.」(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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