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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입산금지? 그런 게 어디 있어!

by 답설재 2013. 11. 21.

 

 

 

 

저 아래에 우리 동네가 있습니다. 이것도 사는 거라고, 근래에는 저기 올라가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 산에도 나름대로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온 산을 물들였을 것입니다.

 

"입산 통제 안내"

내려오면서 본 입간판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옆에서 젊은 부부가 함께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예쁘고 단단하게 생긴 부인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습니다.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는 저 산의 특정 구역(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지, 원……) 입산을 통제한다는 경고를 보고 그런 평가를 한 것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 나는 이 결정을 따를 수 없어!

― 이건 잘못 정한 거야!

― 이런 결정은 있을 수 없어!

― 나도 몰래 이런 결정을 내려?

 

어떤 뜻으로 한 말이겠습니까? 아마 저 산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내가 착각한 것일까요? 2,148ha이면 저 산 전역일까요?

이렇게 해놓고, 이렇게 허술한 경고로써 벌금을 물게 하겠다니……

 

 

 

 

어느 변호사가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령 일본이나 미국보다 헌법 소원이 많아서 그들이 우리나라의 법규 해석 사례를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기야 걸핏하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헌법소원만이 아니고, 화가 났다 하면 "장관 좀 보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식인, 그러니까 대학 교수도, 아니 대학 교수가 더 그런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어느 교수는 장관 앞에서 저 들으라고 일부러 그랬는지 "그런 결정을 한 공무원은 매국노!"라고 해서 분통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그 장관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을 찡긋 해주어서 그 무참한 말을 들으면서도 참았습니다.

 

"장관 나와 봐!"

그럴 때마다 장관이 나가거나 나서야 할 때 모른 체해서는 나라 꼴이 안 되겠지만, 이치에 맞지 않아서 말단 직원이 들어주지 않은 어떤 요청을 상급자가 으스대며 들어주는 일도 한심한 처사입니다. 그러니까 말단은 우스운 존재가 되고 "장관 나와 봐!" 하고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일이어서, 요청을 들어주는 것과 타협을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이 이야기를 일본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어느 장학관에게 했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하…… 일본인들요? 그들 같으면 뭐 물어볼 것도 없지요. 으레 '12월 15일까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러지 않겠어요?"

 

일본은 공무원을 하기가 참 편한 나라라고 합니다. 국민들이 정부에서 하는 일에 잘 협조한다는 의미도 있고, 민원인들이 "장관 나와 봐!" 그러지도 않고, 말단 담당자만 만날 수 있어도 고마워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무서운 힘? 끔찍해서 예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일본인들은, 혹은 한국의 지일파 중 특이한 사람들은, "일본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국민도 많다"고 말하지만, 그러면 뭐 하겠습니까? 무력을 동원하든 어떻게 하든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

피터 드러커가 세계적으로 관료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 것을 잘 해석해 봐야 할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일본 출장을 갔을 때, 좌중에서 독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쪽에서 그랬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독도에는 관심도 없다고……. 그럼에도 지금은 일본의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 "그런 게 어디 있어!" (혹은) "장관 나와 봐!"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지켜야지."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반응입니까?

 

다 장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적으로는 어느 나라가 더 유리하겠습니까?

 

이 물음을 가지고 게임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게임이 되겠는가 할 사람이 있겠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변호사도 그랬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가령 일본이나 미국보다 헌법 소원이 많아서 그들이 우리나라의 법규 해석 사례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렇게 말한 그 변호사를 실제로 소개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장차 어느 나라가 더 잘 될까?

나로서는 당연히 우리나라가 이긴다는 쪽에 패를 걸고 싶지만, 딱 한 가지 조건을 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실없는 조건이라고 할 것이 뻔하지만, 그 조건이란 "교육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교육을 잘 하는 것이냐?"고 묻겠지요.

그 대답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것입니다. 조건을 건 쪽이니까요.

이렇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육은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하는 그 비판력을 살려주는 토론학습, 문제해결학습 같은 활동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입식을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나라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국가경쟁력? 그런 수업이 아니고는 다른 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주입식 가지고도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정말로'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기야 하필 일본이겠습니까?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쓴 걸 어느 일본인이 알게 된다면 웃을 것입니다. "노벨상도 못 받는 나라의 교육을 가지고……"

 

게다가 주입식을 신봉하고, 주입식 강의로 봉급을 받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비관적이 되어버린 분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고까워하지는 마십시오."

 

아침에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 "美 '日 집단자위권 대상에 한반도 포함"

― "美 이어 EU도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 지지"

그렇다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일본은 우리나라 침략을 '진출'이라고 표현합니다)에 대해 이제 미국과 유럽이 승인한 것입니까? 그렇게 까칠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까?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그들이 우리를 잘 보호해 주겠지, 생각하면 됩니까?

이런 기사도 봤습니다.

― "기록이 사라진 나라, 日帝 관련 문서 여러 곳에 흩어져 각자 어떤 자료가 있는지도 몰라"

 

그 기사들을 읽을 때의 우울함이 스러지지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나 한말 침략 때는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고 '진출(進出)'했지만, 앞으로는 우리에게 물어보고 군대를 보낼 테니까 상관 없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일까요?

 

또 있습니다.

― "日 '安重根은 사형판결 받은 인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 하얼빈 역 안중근 의사 기념 표지석 설치를 이야기한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안중근은 범죄자"라고 발언했답니다.

안중근 의사가 왜, 누구에게, 사형판결을 받았습니까? 이토를 죽였다고? 그럼 이토는 가만히 있었다는 말입니까? 이토를 원망하며 사라져간 영혼들은 어떻게 합니까?

 

 

 

 

― "그런 게 어디 있어!" 혹은 "장관 나와 봐!"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지켜야지."

그 기사들을 읽으며 생각해본 것뿐입니다.

 

생각으로야 어딘들 못 가고, 어떤 일을 못하겠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제발 주입식 교육 좀 걷어치워 주십시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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