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 선생들, 학원 선생들이 싫었다. 돈을 받아먹으면서 가르친다는 게 고작 수능 문제와 번호 찍기라니, 어둠은 시련과 고난, 아침은 희망, 소쩍새는 감정이입, 강은 사랑의 장애물…… 네모와 세모를 그리며 시를 공부하는 동안,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벅참이나 따뜻함은 바짝 말라버렸다. 사실 수능은 그런 걸 느끼지 말라고 강요하는 시험이었다.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것, 그것이 수능 시험에서 요구하는 능력이니까. 처음엔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말했다. 문제를 보고 답을 당최 모를 때 찍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선생에게 나는 손을 들고 물었다. 그걸 왜 배워야 해요? 그러자 선생은 대답했다. 알기 싫으면 듣지 말고 나가.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찍기를 알려주겠다는데 왜 따지느냐고 화내는 선생은 되지 말자고, 아이들에게 시는 정해진 대로 해석해야 된다고 일러주진 말자고, 그랬었다.
그런데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아이들에게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굴고 있었다. 너 대학 안 갈래? 너 이런 식으로 하면 수능 못쳐, 입시가 장난이니? 이런 건 수능에 안 나오니까 하지 마. 그게, 참 웃겼다.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에서 옮겼습니다(한인선, 「유랑의 밤」『문화일보』2014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흔히 하는 소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곤혹스럽고, 낯뜨겁고, 쑥스럽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이런 부분도 있었습니다.
굴색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마주 앉아, 나는 그 아이들을 더 파랗게 질리게 하고는 돈을 받았다. 몸이 아프거나 학교 현장학습 등으로 과외 수업이 미뤄지면, 보충을 잡아서라도 횟수를 채웠다. 과외는 돈을 받고 정해진 횟수를 채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횟수가 늦어지면 그만큼 돈 나올 시기도 늦어지는 것이다. 끼니도 거르며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과외를 하러 다니는데, 돈을 적게 받거나 늦게 받을 수는 없었다. 녹초가 된 상태로 나는 힘없이 아이들을 다그쳤다. 공부해. 딴짓 하지 마. 시키는 대로 외워. 무조건.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었다.
지난 2년간 서른 개가 넘는 과외를 해오면서 나는 점차 진화했다. 더 이상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수능 문제로, 번호 찍기로 사라져가도 딱히 울적할 것도 없었다. 두 시간을 채우면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더 잡는 것보다 횟수를 늘리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이득이었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살기 위해 살았다. 중요한 건 질리지 않고 과외를 하는 것이지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 아이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
'당선소감'의 작가 프로필은 딱 두 줄이었습니다.
▲ 1989년 경기 안성 출생
▲ 성균관대 국문과 4학년 재학중
교육자였던 내가, 소설가가 된 저 학생, 이제 대학교 4학년인 저 소설가를 만난다면 뭐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겠습니까?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라면 다음 다섯 개의 답지 중 한 가지를 가려 ( ) 안에 그 번호를 써 넣게 되겠지요.……………………………… ( )
① 말은 무슨 말, 오히려 저 학생이 "정말 교육이 뭐 그렇게 이루어지는가?" 되물어서 대답하기도 난처한 상황을 만들지 말고 슬며시 일어 서버린다.
②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이 하는 짓을 전체적인 현상인 양 소설을 써서 오도(誤導)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내 준다.
③ "과외 지도가 교육이냐? 그것부터 사고의 오류가 아니냐? 그까짓 경험으로 교육자연(敎育者然)하면 되겠느냐?"고 항의한다. 만약 과외도 교육이라고 주장하면 용감하게 '끝짱토론'을 벌인다.
④ 차라리 이와 유사하거나 더 썩어버린 사람들 혹은 그런 현상을 찾아서 이야기해주고 정말 큰일이라며 맞장구를 쳐서 위기를 모면한다.
⑤ 듣거나말거나 우리 교육이 개선되고 있는 점을 들어서 희망과 기대를 가지라고 타일러 준다.
그럴 듯한 답이 없습니까?
뭐 그럴 줄 알았다고 하고 싶습니다. 그럼, 어떤 답을 마련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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