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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아이들은 말이 없게 된다

by 답설재 2014. 3. 20.

목청도 좋지
                               
                                         박행신(1954~ )

1학년 꼬마들은
목청도 좋지
- 저요! 저요!

 

아침부터 시간마다
온 삼월 다 가도록
목청도 좋지
- 저요! 저요!

 

꽃샘추위야 오건 말건
개나리야 피건 말건
목청도 좋지
- 저요! 저요!

 

 

 

 

 

저렇게 "저요! 저요!" 하던 아이들이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조용해집니다.  "그렇게 조용한지, 1학년 교실에 와 보기나 했나?" 하고 묻겠군요. 떠들지요, 떠들기는.  얼마나 떠드는지 녀석들에게 "조용히 해!" "좀 조용히 해!" 하다보면 금방 배가 출렁출렁하게 되고, 점심시간이 아직 멀었으니까 물이라도 마셔서 배를 채워야 또 아이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두세 달만 지나면 "저요! 저요!" 해봤자 별 수 없다는 걸 눈치 채게 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나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무던히도 "저요! 저요!" 하는 녀석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께서 무언가 물어보실 때만 발언이 허락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주변의 아이들이나 선생님께 무언가 아는 체하고 싶고, 궁금한 것이 있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는 것이 좋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만있어 봐봐. 학습목표와 학습문제부터 파악하고……"  "우선, 활동 1, 2,3부터 해야 해."  "자, 마지막으로 형성평가, 즉 골든벨 차례구나."

 

그러다보면 세월이 가고, 3학년, 4학년이 되면 아주 곰삭은 것처럼 다루기가 제법 좋은 아이들이 됩니다. 그 녀석들이 5학년, 6학년이 되어버리면, 선생님 말씀보다는 저희들끼리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말썽을 피워도 좀 더 크게 피우니까 "저요! 저요!"에 답하기보다는 더 골치 아픈 대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아예 미국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을지……), 입학 초기에는 좋은 성적을 내지만 이내 그 성적이 뚝뚝 떨어져버리고, 심지어 졸업도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높다고 해서, 그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발표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질문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고, 글을 쓰라면 책보다는 인터넷에서나 찾으려 하고……"  정말 그런지 따져보고 싶다면, 그런 사례 분석해 놓은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되지만, 미국의 저명한 대학에서 교수로 퇴임한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르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느니 어쩌니, 창의력을 길러야 하고 토의·토론 능력을 키워야 하고 어떻고 하며 떠들다가도, "현실이 어떻고" "대학입시가 어떻고"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것이 어떻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한 가지 답을 요구하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고쳐야 합니다. 거기에서 이 난마처럼 엉켜 있는 문제들의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 아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는 공부를, 우리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해야 하는 까닭을 찾아내고 우리 아이들도 좀 여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아! 이 이야기는 해묵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학교를 떠난 지 몇 년이나 지났으니까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객쩍은 옛날 이야기였다고 치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시인은 이 시를 이처럼 아름답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아이들 목청처럼 듣기 좋은 게 또 있을까. 교실에서 책 읽는 소리도 듣기 좋고, 수학 시간에 구구단 외우는 소리도 듣기 좋다. 선생님 말씀에 "네!" 하고 대답하는 소리는 또 얼마나 귀에 살가운가. 송골송골 콧등에 땀 맺혀가며 문제를 풀고, 연필에 침 묻혀가며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아이들 모습도 보기 좋고, 갓 깬 물총새처럼 재잘거리는 목소리도 듣기 좋다.

 

온 삼월 다 가도록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건 말건 "저요 ! 저요" 하고 씩씩한 목청으로 손을 드는 1학년 아이들. 교실이 들썩거리고 운동장이 꿈틀거리는 그 힘찬 목청에 꽃샘추위도 슬슬 물러가리라. 아이들 목청에 놀라 개구리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얼결에 "저요! 저요!" 하고 땅 위로 뛰어나올 것이다. 3월은 새들도 꽃들도 모두 1학년 꼬마들이 되어 "저요! 저요!" 하고 목청도 좋게 손을 들고 나오는 달이다.

 

- 이준관 | 아동문학가, 『조선일보』 2014.3.14. 「가슴으로 읽는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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