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 차림에 허름한 모자를 쓰고 산비탈을 오릅니다.
저기쯤 앞에 오순도순 젊은 부부가 가고 있습니다. 뒤따르는 아내의 두 팔이 '팔랑팔랑' 나비날개처럼 움직여 오르막인데도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뒤따르는 걸 눈치 챘는지 걸음이 좀 빨라지는 듯했고, 이내 남편이 뒤에 섰습니다.
내가 아무래도 음흉해 보이는가보다 싶었고, 공연한 추측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는 무슨 볼일이나 있는 것처럼 멈춰 서서 먼 산을 좀 바라보며 어슬렁거리니까 이내 저만치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오르면 안 되겠다 싶은 곳에서 골짜기를 벗어나 큰길로 나섰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그 부부를 보았습니다. 그 길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좀 흉측해 보이는 내가 뒤따르는 걸 이번에는 눈치 채지 못했는지 무슨 얘기를 길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가 이 가을 나뭇잎에 머물러주는 저 햇살처럼 아늑하고 밝은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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