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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이 글 봤어?

by 답설재 2013. 7. 19.

 

 

 

 

 

"이 글 봤어?"

 

 

 

 

 

 

 

  안규철의 「실패하지 않는 일」이란 글(사실은 『현대문학』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이라는 이름의  연재 작품)을 옮겨 오면서 '시' 같은, '시보다 더 시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또 그의 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연재 37회째(2013년 1월호, 366~367쪽)인, 어마어마한 자리의 글과 그림입니다.

 

  "당신들 이 글 봤어?" 하고, 예술도 문학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그 이름값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이미 봤겠지요?

  보고, "예술가라고 해서 매일 예술만 하고 살 수 있나?" "이 나라, 이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내가 좀 나서서 바로잡아 놓고 다시 예술을 하기로 했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내막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는 죽은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노래를 짓고는 그만 딴짓을 하고, 어떤 이는 순진한 사람들의 정서를 '점령'해서 얻은 권력으로 딴짓을 합니다. 겸연쩍으면 무슨 대단한 선언을 하듯 "절필(切筆)"을 이야기했다가 슬그머니 다시 쓰기도 합니다.

 

  놀라운 건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고, 우선 나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자문(自問)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 봤어?"("읽고 정신차려!" 혹은 "반성 좀 해!") 

 

 

 

 

 

 

 

 

 

 

「모방과 착각」

 

  A는 B가 아니다. 그런데도 A가 B와 비슷해지는 데는 대개 두 가지 상이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A가 B를 모방하거나, 아니면 A가 스스로 B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개(A)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B)을 모방하여 두 발로 걷거나 앞발을 내밀어 악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개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스스로를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착각하기에 이른다. 모방하는 A는 자신이 B가 아니고 A임을 알지만, 착각하는 A는 이것을 모른다. 한쪽은 희극이 되고 다른 한쪽은 비극이 된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예술가 아닌 사람(A)이 예술가(B)를 모방하는 데서 시작된다. 고된 훈련을 통해 A는 B의 상태에 다가가고 결국 스스로 B가 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이 상태가 무슨 면허처럼 자동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잠깐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만에 빠져 있는 사이에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닌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결과 한때 예술가였으나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스스로를 여전히 예술가라고 착각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예술가에게 가장 끔찍한 악몽이 이것이다.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 내가 무엇을 했기에 예술가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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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1955년 서울 출생.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슈투트가르트미술학교 졸업. 저서 『그림 없는 미술관』 『그 남자의 가방』.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서점을 뒤져봐도 이미 『그림 없는 미술관』은 보이지 않아서 『그 남자의 가방』만 사왔습니다.

 

  학자, 예술가들의 글을 읽으면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하던 내용에 대해서는 '그럼,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러는 '이것 봐라?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아,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흔히 '그렇지! 그렇고말고' 하고, 드물게 '이것 봐라?' 합니다.

  물론 '그렇지!' 할 때도 좋고,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지만, '이것 봐라?' 싶을 때는 더 좋고,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이것 봐라?"를 더 자주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게 더 진정한, 더 필요한 교육이다.'

  '교수들은, 학자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엘리트, '잘난 사람'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내가 알아낸 것을 들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자들, 학자들, '잘난 사람'들 중에는 "너희들은 내가 알아낸 것을 들어라!"는 주입식 교육, 그것도 그 엘리트들이 정리한 것들을 외우는 활동을 통해서 칭찬받고, 성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 또한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는 데 익숙해서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지식주입식 교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교육자들, 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꼭 봐야 한다!'

  '오만한 자들이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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