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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교황의 눈, 나의 눈

by 답설재 2013. 4. 10.

 

교황 피우스 2세 흉상 (박미진 펴냄, 도록 『바티칸 박물관전』, 지니어스 엠엠씨, 2012, 60~61쪽).

 

 

 

성직자들의 흉상이나 초상을 이야기하려니까 두렵습니다. 주제넘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종교에 관한 언급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인상적인 점만 말한다면, 「교황 피우스 2세 흉상」은 웬지 무섭습니다. 멋진 의복이나 모자는 돈만 많으면 갖출 수 있지만 저 근엄한 표정, 눈초리가 그렇습니다.

 

이 교황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통일하려고 했다는데, 그래서였는지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통일의 야망을 품었던 군주 체사레 보르자가 그의 저택에 이 흉상을 보관했었답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아버지가 교황이었고, 대주교로 출발했는데, 그를 모델로 하여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된 그를 드러내놓고 존경했답니다. 내가 그의 책은 많이 읽었으면서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시오노 나나미가 쓴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이 생각납니다. 보르자가 마지막 가는 길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 깊은 소설이었습니다.

 

다음은 「교황 마루켈루스 2세 초상」입니다. 그는 1955년 4월 9일에 교황이 되었는데, 재위가 겨우 20일 만에 끝나버렸답니다.

 

 

 

교황 마루켈수스 2세 초상 (박미진 펴냄, 도록 『바티칸 박물관전』, 지니어스 엠엠씨, 2012, 96~97쪽).

 

 

성 베네딕토 흉상 (박미진 펴냄, 도록 『바티칸 박물관전』, 지니어스 엠엠씨, 2012, 86~87쪽).

 

 

 

 

베네딕토 수도회 창설자, 성 베네딕토의 흉상에 대해서 도록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97쪽).

 

"왼손에 들고 있는 교편(敎鞭)은 순명하지 않던 수도자를 벌하면서 사용했던 매를 상기시킨다. 오른손에는 그가 525년에서 529년 사이에 저술한 수도 규칙서를 들고 있다."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박미진 펴냄, 도록 『바티칸 박물관전』, 지니어스 엠엠씨, 2012, 88~89쪽).

 

 

 

마지막으로,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 상태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도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89쪽)

 

"참회복을 입은 깡마른 몸에 여윈 얼굴로 작은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은수자 히에로니무스는 기도하는 자세로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오른손에 돌을 쥐고서 가슴을 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는 옷도 입지 않고 추기경 모자는 땅에 내팽개쳐 놓았는데 이는 세상 명예를 버렸음을 상징한다. 히에로니무스가 종종 가슴을 쳤던 참회의 상징인 돌을 비롯하여, 묵상하며 바라보는 십자가와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의미를 담은 두개골과 같은 다른 상징들이 덧붙기도 한다. 성인 곁에는 자주 사자가 등장하는데, 히에로니무스가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었더니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늘 따라다녔다는 전설 때문이다."

 

긴 문장을 옮겨썼지만, 예술의전당 '바티칸 박물관展'에서 저 성자의 고뇌에 찬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도 그 누더기가 된 옷을 이야기하거나 그 옷에 주안점을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은 옷이나 모자는 그런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의 경우, 추기경 모자까지 내팽개쳤는데, 까짓 옷이 대수이겠습니까?

 

이 그림에도 히에로니무스가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준 그 사자가 등장해 있는 것을 기이하게 여길 사람도 거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자나 특히 호랑이가 등장해 있는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로지 '눈이 모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눈에 대한 생각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철학적, 논리적인 단언은 불가능하지만, 그가 정직한지 아닌지, 순박한지 아닌지, 엄격한지 아닌지, 음흉한지 아닌지, 더러운지 아닌지, 의지가 굳은지 아닌지, 자애로운지 아닌지, …… 나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아닌지, 요컨대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사람들의 특성 정도는, 눈만 바라봐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 노쇠했다고 스스로 물러나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한지… 가톨릭 신자들이 그분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 교황도 존경스러웠지만, 그 후임으로 뽑힌 새 교황도 '썩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만 TV 화면이나 신문에서 그분의 눈을 들여다봤을 뿐입니다.

'숨김이 없겠구나.'

'정직하겠구나.'

'아무래도 엄격하고 그래서 좀 무섭긴 하겠구나.' …………

 

'주제넘은' 기원일까요? "언제나 弱者의 편에 선 '아르헨의 김수환'" "허름한 아파트·버스 출퇴근" "항상 신자와 함께 낮은 자리에" 등으로,1 가톨릭 신자는 물론 바티칸을 지켜보는 세상의 비신자들에게까지 설명이 필요없는 종교적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더불어 '광신도'가 판을 치는 우리에게도 뭔가를 더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로이터 뉴시스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운데) 아르헨티니 추기경이 14일(현지 시각)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서 스페인 추기경(왼쪽)고가 이탈리아 추기경(오른쪽) 사이에 서서 군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의 교황명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성자(聖者)의 이름을 땄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사상 첫 미주(美洲) 대륙 출신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조선일보 2013.3.15, A1면).

 

                                                                                                                                           

 

 

눈이 모든 걸 보여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심지어 보톡스 주사를 맞고 얼굴을 딴 사람처럼 뜯어 고쳐서 눈이 더 맑아지고 아름다워진다면 그건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지만, 아무리 뜯어 고쳐도 눈이 변하지 않으면 다 헛일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함께 근무하게 된 교감은 멋쟁이 여성으로, 어느 한가로운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머리는 반백이지만, 목소리도 힘차고 얼굴도 당차게 보이니까 얼굴의 점만 빼면 훨씬 젊어보이겠어요. 요즘은 남자들도 성형외과에 가서 점도 빼고……"

 

'별 쓸데없는……' 하고, 그 말에 대답도 않고 말았는데, 며칠 전 점심 시간에 어느 분이 또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그걸 화제로 여러 사람이 끼어들었고, 사무실 건물에 성형외과가 있으니까 말만 하면 좀 싸게 해줄 거라는 실제적인 제안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별 쓸데없는……' 하며 미소만 짓고 말았지만, 내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는 이상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점들은 '저승꽃'이라는 것들입니다. 저승 갈 날이 가까워졌다는데, 그걸 숨긴다고 될 일입니까?

 

"나이가 훨씬 더 많아도 얼굴이 깨끗하기만 하던데…… 저 신임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렇잖아."

그건 사실입니다. 그만큼 깨끗한 생각, 깨끗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 같으면, 자주 속상해서 나중에 병원에 가서 봤더니 진짜로 속이 상해 있어서 평생 약을 먹게 되었고, 그런저런 일들로 얼굴에 저승꽃도 많이 피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우리 사무실 건물에 있는 성형외과는 눈매 교정도 해준다고 씌여 있긴 합니다. 점도 빼고 눈매도 교정하면 한 십 년 젊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하면 아내가 바라보고 있다가 '아, 이 사람이 아직은 죽을 날이 멀었구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게 되면 이럴 것 아닙니까?

 

"에이 참, 실없는 사람…… 난 또 얼마나 사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