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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빛과 색의 아름다움을 넘어」

by 답설재 2013. 3. 20.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빛과 색의 아름다움을 넘어」

 

 

 

 

토마스 모란, 「필라델피아주 페어마운트 급수소 풍경」, Oil on linen, 133×164㎝, 1860-70

(한미수교 130주년 기념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 American Impressionism 1870-1940 도록 38~39쪽)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이 그림이 보입니다. 제목을 보면 가운데의 저 시설이 급수소랍니다.

'급수소'? 그런 시설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 그림은 아니겠고, 구름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광활하고 아득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쪽 앞으로 사람들이 보입니다. 잘난 체하고 까불어 대기도 하지만 자연에 비하면 작은 존재들이죠.

 

 

 

찰스 해럴드 데이비스, 「여름밤」, Oil on canvas, 65×75㎝, 1910(도록 44~45)

 

 

A Summer Night…… 배는 고팠어도 세상 모르고 지내던 그 여름밤들이 그리워집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印象主義)가 어떤 건가, 싶어서 DAUM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하던 예술 조류. 미술에서는, 대상이 화가에게 주는 인상을 중시하여, 빛과 함께 변하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주로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는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들라크루아, 고야, 터너 등이 있다. 음악에서는 (……)"

 

예술의 역사에서는, 사전에서처럼 체계적으로 사전보다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겠지만, 이미 다 지나가버린 것이어서 더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학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화가로서의 길에서는 이와 같은 그림도 그리게 되는 것이 흔한 과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교육대학에서 그림을 그리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이 그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면 더 열심히 그렸을 것입니다.

「여름밤」은 엄청난 그림이었습니다. 도록의 사진은 그 「여름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 이 사진은 도록의 사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선 색깔이 다릅니다.

 

 

 

프레드릭 저드 워, 「바다 풍경」, Oil on canvas, 96×112㎝, 1900(도록 112~113쪽)

 

 

부서지는 파도!

무섭지는 않습니다. 화려하여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화가가 그렇게 그려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다 사라졌습니까? 교수들이 설명하는 데 좋고, 그 설명을 기억하고 상기해서 시험을 보는 데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겠지만, 오늘날에도 온갖 사조의 화가들이 골고루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바다 풍경을 저렇게 그릴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인상주의 화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도록에 의하면, 프레드릭 저드 워는 미국 최고의 해양화가였답니다. 다행인 건 이 사진은 모두 도록의 사진들을 복사한 건데, 「바다 풍경」은 도록의 것보다 더 멋진 느낌입니다.

 

바다는 삶에 의욕을 느끼게 하고 끝없는 그리움을 느끼게 합니다. 눈물겹기도 합니다. 그것은, 나에게는 내가 없어져도 영혼만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나의 허술함으로 저 바다, 저 파도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철이 없어서였습니다.

 

 

 

존 올슨 해머스태드, 「미시간호」, Oil on linen, 78×98㎝, 1887(도록 184~185쪽)

 

 

구경할 게 많은 그림입니다. 저 파도, 하늘 빛이 그렇습니다.

 

 

 

알드로 톰슨 히바드, 「버몬트주 언덕의 시골집」, Oil on linen, 76×101㎝, N.D.(도록 140~141쪽)

 

 

「버몬트주 언덕의 시골집」, 눈 덮인 언덕, 마을, 하늘이 온통 하얗게 빛납니다.

 

 

 

다니엘 가버, 「녹색의 대저택」, Oil on linen, 148×159㎝, 1934(도록 170~171쪽)

 

 

본래 대형 작품이긴 하지만 저 나무들 때문에 훨씬 크게 기억됩니다.

 

 

 

에드워드 윌리스 레드필드, 「센터교 화재」, Oil on linen, 117×147㎝, 1923(도록 172~173쪽)

 

 

도록의 설명에 의하면, 1923년 여름, 펜실베니아주와 뉴저지주를 잇는 112년 된 센터교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화가 레드필드는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불과 연기의 인상적인 광경에 매료되어 이 그림을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답니다.

 

"센터교가 불타오른다! 델라웨이강의 펜실베니아주 쪽에 서 있을 때, 다리가 불타는 것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923년 여름, 오래된 교각의 목재 부분은 한밤 중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붉은 색으로 불타고 있었다."

 

우리가 다닌 그 중학교 건물은 옛 향교였는데, 어느 날 밤 목조로 된 강당이 전소되었습니다. 우리는 불 구경을 하며 신이 났고, 교실로 쓰는 저쪽 신축 건물까지 다 타버리면 좋겠다고 떠들어댔습니다.

 

 

 

로버트 스펜서, 「오후의 물놀이」, Oil on linen, 99×114㎝, 1920(도록 176~177쪽)

 

 

도록에 의하면, 도시 건물들이 인접해 있는 부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놀이 하는 모습을, 밝은 색감과 대조적인 색조로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00여 년 전에는 미국에서도 저렇게 놀았구나' 싶었습니다.

 

 

 

어니스트 마틴 헤닝스, 「여름날 말 타는 2인」, Oil on canvas, 91×91㎝, 1930s(도록 202~203쪽)

 

 

여름철 한낮, 두 인디언이 말을 타고 한가로이 가고 있습니다.

저 인디언이 친구이면 좋겠습니다. 무슨 부탁을 들어 줄 일은 거의 없을 것 같고, 내가 저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령 '내 영혼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이제 잘 울지 않지만, 사실은 울고 싶을 때가 있다는 얘기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애버트 풀러 그레이브스, 「종자돈」, Oil on linen, 102×138㎝, 1910(도록 134~135쪽)

 

 

풍경화가 대부분인 이 전시회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 잊혀져 가는 모습들을 주제로 한 풍속화를 많이 그린 우리나라의 어느 화가가 생각났습니다. 예금통장을 들여다보는 부부가 정겹습니다. 모두들 저렇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프레데릭 워런 프리어, 「제목 정하기」, Oil on panel, 50×42㎝, 1882(도록 182~183쪽)

 

 

신문(조선일보)에 소개된 그림입니다.

프레드릭 워런 프리어의 아내 마가렛 키난도 화가였답니다.

 

 

 

 

 

오는 3월 29일(금)까지 열리는(그러니까 이제 오늘까지 딱 열흘이 남았습니다.) 이 전시회의 입장료는, 성인 12,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아에게도 4,000원을 받고, 48개월 미만이면 무료인데, 나 같은 경우에는 5,000원을 받는 것입니다. 나는 때로는 그냥 성인 입장료를 내고 표를 받습니다.

 

 

 

 

 

그 날, 혼자서 서성거리던 한가람 미술관 주변의 나뭇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푸른 기운이 돌고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