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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파라오에 대한 경배

by 답설재 2013. 3. 5.

 

 

조선일보, 2013.1.11. A20,

'신문은 선생님-숨어 있는 세계사' 「피라미드, 파라오의 사후세계 위해 만든 무덤이에요」의 사진.

사진 출처 : Getty Images/멀티비츠

 

 

 

 

 

  자주 생각합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가져야 하고, 우선 나 자신에게 그렇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이 사진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에는 나 아니어도 좋은 일뿐이고, 내가 없어도 전혀 지장이 없는 일들뿐인데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러므로 우선 나 자신에게 좀 호의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소인배니까 우선 나 자신에게부터 잘 대해 주고, 혹 그게 넘치면 남에게도 조금 잘 대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이 마음이 편해지면 표정도 좀 편해질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마 미련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고, 나 자신을 대하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것들, 들려오는 것들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와 옷깃을 스칠 일도 없이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에 떠오르기만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어지럽게 할 때도 흔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가령 며칠 전 이 블로그에서 인간쓰레기 취급한 그 목사가 나에게 욕을 얻어먹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너그럽게 하자. 제발 좀 그렇게 하자……'

 

 

 

 

 『슬픈 열대』(레비-스트로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참배의 형식과 자신 사이를 방해하는 오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우상에 절을 한다거나 사물의 어떤 가상적인 초자연적 질서를 숭배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사상가에 의해서 또는 그의 전설을 창조하였던 하나의 사회에 의해서 2,500년 전에 형성되었던 결정적인 명상들에 대해 다만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나의 문명은 이 같은 명상들을 확신함으로써만이 그것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경청하였던 대가들로부터, 그 사상을 읽어보았던 철학자들로부터, 조사해보았던 사회들로부터, 그리고 서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과학자들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워왔던가?(738쪽)

 

  내가 배운 것들은, 비록 하찮은 것들이긴 하지만, 지금 내가 가는 길에 어떤 길잡이가 되고 있는지, 무엇을 알고 나면 저 파라오와 같은 표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참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조상(彫像)에?

  유적에?

  우상(偶像)에?

  마지막에는, 아니 잠깐씩이라도 저런 표정일 수 있다면, 못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불가능할 뿐입니다.

 

  아! 나는 지금 겨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2013.1.11. A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