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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展

by 답설재 2013. 3. 13.

 

얀 즈르자비, 증기탕 Steam Bath, 1920년대, 36.5×46㎝, 캔버스에 유채

 

 

 

도록에는 이 그림에 대한 특별한 해설이 없습니다. 보면 아는 건데 뭔 설명? 그런 뜻이겠지요.

좀 우스운 말이지만 때로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끼리? 남자들끼리?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겠고 그럼 친구들끼리? 뭔 친구가 그런 얘기나 하나? ………… 그냥 그렇다치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 왜 "목욕탕에 들어가면 신체가 건장한 놈이 최고"라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돈이 많아도 지식이 풍부해도 잘난 척할 일 없고 알통이 굵고 그런 놈이 기를 편다". 거기다 좀 덧붙이면 등에 용트림을 그린 놈도 똑바로 쳐다보기가 두렵습니다.

얀 즈르자비가 그린 「증기탕」의 저 녀석들은 다 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모습이나 표정들이나 가관입니다. '에이, 지저분한 것들!'

 

여성들 중에도 목욕탕에서 기를 펴는 사람이 있습니까?

 

 

 

프란티셰크 쿠프카, 가을 태양 연구 Study for Autumn Sun, 1906년, 46.5×47㎝, 판지에 유채

 

 

 

여성들을 그린 증기탕 그림은 없고 「가을 태양 연구」라고 멋있는 제목을 붙인 그림은 있었습니다. 「Study for Autumn Sun」……

이 그림으로 여성용 증기탕을 상상해 볼까 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 고대신화에서 모티브를 응용한 상징주의적 그림'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들이 저 위의 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우리 남성들과 같다고 보기는 싫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처럼 별 수 없다면 '우리'처럼 뭐랄까 좀 지저분하고 별 것 아닌 걸로 주변의 기를 죽여보고 싶어하고 여성들도 그런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원초적 '환상(幻想)'은 얼마나 가난해지겠습니까.  다 '헛것'이라니! 그러면 세상은 그만큼 쓸쓸해질 테니까 환상은 환상대로 그냥 두는 게 좋을 것입니다.

 

여성들은 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남성들처럼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까?

 

 

 

프란티셰크 무지카, 세 자매 Three Sisters, 1922년대, 82×65㎝, 캔버스에 유채

 

 

 

「세 자매」를 봐도 '증기탕'을 주제로 한 그 환상은 조금도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짙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화가는 '목가적인 일상생활을 시적 서정성이 가득한 화면으로 전환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세 자매」도 포근한 분위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프란티셰크 쿠프카, 흩날리는 청색에 대한 변형 Variation on the Blowing Blue, 1913~22년, 72×83.5㎝, 캔버스에 유채

 

 

 

「가을 태양 연구」를 그린 쿠프카라는 화가는 「Variation on the Blowing Blue」 와 같은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쿠프카 부부의 초상」이라는 다음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화가가 아니어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든.

유제니라는 이 여인이 쿠프카의 '아내이자 영원한 뮤즈'임을 알리는 작품이랍니다. 도록의 표지와 리플렛에는 이 그림을 넣고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이라는 표제를 붙이고 있습니다.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프란티셰크 쿠프카 , 쿠프카 부부의 초상 Portrait of F. Kupka and Mrs. E. Kupkova, 1908년, 100×110㎝, 캔버스에 유채

 

 

 

프란티셰크 쿠프카, 건너편 강둑(마른강 둑) The Other Bank(Bank of Marne), 1895년, 58×49.5㎝, 캔버스에 유채

 

 

 

그림을 보면 늘 하는 '촌스런 생각'이지만 전시장에서 나오는 길에 「건너편 강둑(마른강 둑)」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가져와서 거실에 턱 걸어놓고 싶었습니다.

촌스런 생각!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이나 전시장에 갈 때에는 당연히 무슨 특별한 학습목표를 제시하겠지만, 간편하게 이런 질문을 던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얘들아, 이 작품들 중에서 딱 하나만 가져도 좋다면 어떤 걸 가지고 싶은지 생각해 봐."

그렇게 하고 나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걸 꼬치꼬치 물어서 답하게 하거나 글을 쓰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덧붙일 것은 이 전시회장에서 가져오고 싶은 그림들은 한두 작품이 아니어서 만약 그런 질문이나 제안을 받으면 난처하긴 합니다. 다음에 보는 작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블라스타 보스트르제발로바-피쉐로바, 1922년의 레트나 Letna in 1922, 1926년, 62×82㎝, 캔버스에 유채

 

 

 

마지막으로, 이건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기록입니다.

내가 조용히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저 노인이면 좋겠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간 저 사람을 닮을 재주는 아예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저 건물 이층에서 미소를 머금고 내려다보는 저 사람, 길가에 서 있는 저 사람이 보기에 '괜찮은' 노인이면 좋겠다는 것인데 저렇게 되려면 우선 이 마음이 문제일 것입니다. 이 마음이 저 노인 혹은 저 그림을 그린 화가 블라스타 보스트르제발로바-피쉐로바──이름이 길기도 하고 좋기도 하군요. 좋은 그림을 그린 화가여서 그렇겠지요──를 닮아서 조용하고 아늑해져야 할 것입니다.

 

이 詩的인 그림에 대해 어떤 해설을 해놓았는지 도록을 살펴보았더니 화가는 "프로레타리아 미술의 개념을 표방한 이리볼커의 문학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서 마술적인 사실주의 그림을 그렸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전시회의 작품들을 보고 우스운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展('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은 지난 2월 6일부터 오는 4월 21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관람객도 얼마 없어 조용히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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