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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이중섭미술관

by 답설재 2013. 11. 16.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은 갈 때마다니까 세 번째였습니다. '이중섭거리'가 생겨서인지 지난번보다는 덜 썰렁했습니다. 어쩔 수 없으면 썰렁해도 좋으니 조잡해지지는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 또 가보게 될는지……

"언제라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층 방을 내어주겠다"는 사람은 있지만 '가고 올 일'을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이 이중섭의 모습은 볼 때마다 예전의 '동네 형들' 중 제일 좋았던 사람 같습니다. 무성영화 '아리랑'을 보러가던 저녁 내가 동전을 입 안에 넣고 달리다가 삼켜 버렸을 때 그 돈을 대어준…….

 

이 부조를, 마을과 바다를 오래 바라봅니다. 그도 저 바다를 바라보며 일본의 친정에 가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저 곳에는 아직도 그의 영혼이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그의 영혼이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따뜻하고 행복하게 지낼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그 가슴 속에 늘 그리움이 가득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지는 않는다 해도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것처럼 살아가니까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 마을을 그렸는지, 미술관에 걸린 작품입니다.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작품이 조금밖에 없고, 그것도 "촬영금지"라고 되어 있긴 하지만 아무나, 다 촬영해가도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대접을 받는 작품들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림, 교과서나 작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나로서는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소중한 것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중섭은 지금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에는 이중섭에 관한 책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못 본 것도 많지만,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여기 전시해도 좋겠는데……' 싶은 것도 있습니다. 내가 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좋은 것, 값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전시물들을 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눈을 가로막는 것은 헐벗고 굶주린 한 그루 나뭇가지에 ○린 그의 슬픔과 생장하는 자태뿐인데 이 매마른 나무를 중심으로 그가 타고난 것을 잃지 않고 소중히 길러온…………"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국어 선생님이 좋아하시던, 순 엉터리인 우리에게 걸핏하면 암송해 주시던 그 「설야(雪夜)」를 쓴 김광균 시인이, 이중섭 작품전 안내장에 저렇게 썼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한 그루 나무'

 '그의 슬픔과 생장하는 자태(姿態)'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사랑과 그리움, 암울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사랑으로만 부둥켜 안게 되면 그 사랑에서 위대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 애절한 기원이 마침내 실현되었다는 것을 그가 죽기 전에 단 한순간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미술관을 나와서 시가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미련 때문에, 어떤 사람은 뭔가 허전해서, 아늑한 그 풍경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괜히 미안해서' 그 아래를 오래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가 한때 거처하던 초갓집 앞마당에 누워 있는 이 녀석은, 집을 지킬 생각은 아예 없어서 발치를 지나는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잠시 눈만 뜨고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다시 잠이 듭니다.

 

 

 

 

 

그 초가(草家)의 부엌 맞은편 벽에 걸어 놓은 사진입니다. '무슨 영정처럼 이걸 왜 여기 이렇게 구차하게 걸어 놓았을까?' 그것도 참 미안했습니다. 그의 모습을 하필이면 그 부엌 흙벽에서 보아야 속이 시원하다는 것인지…………  이중섭미술관에 갈 때마다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파견교사 시절, 그 한겨울 저녁나절, 내가 며칠째 자료를 만들고 있는 인쇄소를 찾아왔다가 한참을 기다려서 짜장면 한 그릇을 함께 먹고 돌아가 싸늘한 방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은 한 고운 영혼.  그 초등학교 교실에서 나와 함께 1년을 지내고,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몇 년을 더 헐떡이다가, 온갖 서러움에 눈물만 쏟다가 가버린 그 어린 아이, 이 나라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을 어느 교회 집사 내외의 '가난하고, 가난하기만 했는데도 그렇게 서러웠던' 어린 영혼.  어느 날, 딱 한 마디로 내가 깨어나게 해주었는데, 고맙다는 말씀 한번 드리기도 전에 떠나버리신 그 선생님…………

 

이중섭은 내가 만나지도 못한 화가인데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대상입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섭이 형! 무조건 미안해. 내가 많이 미안해. 나도 그곳에 가게 되면 우리 한번 만나. 볼일 대충 끝나면 나도 곧 갈게."

 

 

 

『이중섭미술관』에는 없는 『황소』(조선일보, 2014.2.18.A22면,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이것 말고도 없는 것이 많은 『이중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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