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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라오콘 군상』과 예술가의 권력

by 답설재 2013. 10. 26.

 

 

그리스 군사들이 트로이 해변에서 목마를 만들고 있을 때 라오콘 사제가 "함정!"이라고 했지만 트로이인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게다가 바다에서 거대한 뱀 두 마리가 나와서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칭칭 감아 죽여버렸습니다. 『라오콘 군상』은 그 끔찍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무슨 선물을 나누어 줄 것처럼 마을로 들어와서 하늘을 나는 꿈을 좀 보여주고 동네 아이들의 용돈을 받아가는 목마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그리스인들의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갔고 트로이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목마 할아버지들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었고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인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 성을 파괴하고 마침내 점령해버렸습니다.

 

 

 

 

지난해 겨울부터 올 초봄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들」이란 주제로 열린 『바티칸 박물관전』에서 이 작품을 구경했습니다(MUSEI VATICANI, 2012.12.8~2013.3.31).

원본 『라오콘 군상』은 르네상스 시기에 로마 오피오 언덕의 포도밭에서 발견되었는데, 교황 율리우스 2세(델라 로베레)가 이 작품을 즉시 입수해서 조각 정원에 세워 두었답니다(박미진 펴냄, 도록 바티칸 박물관전, 지니어스 엠엠씨, 2012, 88~89).

 

 

 

 

라오콘 군상

기원전 40~20년경의 청동 원본(소실)을 본뜬

하게산드로스, 아타나도로스, 폴리도로스의 대리석 조각의 석고상(19세기경)

205×158×105㎝/바티칸박물관

(박미진 펴냄, 도록 『바티칸 박물관전』, 지니어스 엠엠씨, 2012, 88~89쪽).

 

 

교과서에서는 헬레니즘 미술은 그리스에 비해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현실적이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대답에서 끝부분만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술 그 자체만 가지고는 아마도 정의와 자유를 수반하는 르네상스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없다면 그 르네상스는 형식들을 갖추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이다. 문화 없이는 그리고 그것에 수반되는 상대적인 자유 없이는 사회는 그것이 완벽할 때조차도 하나의 정글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창조가 미래에 대한 하나의 선물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 알베르 카뮈, 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56~257쪽(부록 : 철학 에세이 「5. 예술가와 그의 시대」 중에서).

 

 

 

 

 

"예술가가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칭송을 바탕으로 권력을 가지는 건 보기가 싫고 난처합니다. 게다가 가만히 있지 않고 그 권력을 바탕으로 하여 목소리를 높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문인(文人)의 반열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을 것 같은 상대방이 말했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입을 닫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요. 누구나 다 동일한 생활인이니까요."

 

그거야 누가 모릅니까. 가령, 화가 이중섭이 그처럼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것이 그의 의무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권력을 가졌거나 가지려고 애쓰지 않고 그런 것엔 영 관심도 없이 살다가 갔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가 무슨 선거에 출마했거나 제주도 서귀포 시장이 되었다면 좀 웃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문인은 또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가 정말로 서귀포 시장이 되었다면 그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 주장을 굳이 말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마음조차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또다른 반박을 얼마든지 이어가고 싶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이중섭을, 예술가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엄격하고 단호하지만 저 알베르 카뮈의 '진정한 창조'와 예술에 관한 아포리즘의 단어 하나하나를 자꾸 들여다보면서 어떻게든 내 생각이 옳다는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라오콘 군상」, 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신화와 예술, 예술가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예술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겠습니까? 예술가가 없으면 이 삶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덕수궁미술관'에 가면 서귀포에 가지 않더라도 이중섭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 2013.10.29-2014.3.30), 아직 마음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가령 화가 이중섭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되지 않고 그림만 그리면서 가난하게 살다가 갔지만, 지금은 더 큰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그 마음에 대한 무한한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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