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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과서에 실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by 답설재 2013. 9. 23.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저널 『교육광장』 가을호 <교과서 이야기 3>

 

 

 

교과서에 실린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 류현진의 '교과서적인' 투구

 

 

류현진(26·LA 다저스)의 승전보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살맛나게' 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14일 오전 현재, 그는 11승 3패, 평균 자책점 2.99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괴물'이라는 단어가 애칭이 되어버렸고, 그에 관한 기사는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신인왕에 도전하는 류현진… 그에게 숨겨진 비장의 무기를 분석해보니"라는 기사가 일간지의 한 면을 가득 채웠다.* 개요는 이렇다.

 

∘ 교과서적 투구 폼과 칼날 같은 제구력 → 부드럽게 던지는데 강력하게 꽂힌다.

∘ 다양한 구종, 허 찌르는 볼 배합 → 직구처럼 보이는데 변화구로 들어간다.

∘ 메이저급 강심장 → 만루 위기 부딪혀도 흔들리지 않는다.

 

 

□ 이런 인물들을 교과서에 싣는 일에 대한 논의

 

 

적어도 체육 교과서에만은 꼭 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국위 선양 면에서 도덕이나 사회 교과서에 실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 선수는 교과서에 꼭 실어야 한다!"

"붉은악마의 응원, 이 역사적인 일만은 교과서에 꼭 나와야 한다!"

 

이런 요청(압력?)에 대해서는, 국정 교과서를 집필·관리하는 입장은 검·인정 교과서에 비해 분명히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그 경험에 비추어 탁월한 실적을 보여주는 운동선수들을 교과서에 게재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① 교과서에 꼭 실어야 한다. 국가·사회적인 요청이다.

② 교과서에 꼭 실어야 한다. 국민 체육의 수준 향상을 위한 좋은 배려이다.

③ 교과서에 꼭 실어야 한다. 멋진 국위 선양 사례이다.

④ 교과서에 꼭 실어야 한다. 무엇이든 뛰어나면 돈도 많이 벌고 국격(國格)도 높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과서에 싣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도 들어봐야 한다.

 

⑤ 교과서에 싣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앞으로 혹 실적이 좋지 못하게 되면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축구 감독도 그렇게 되었고, 그런 사례가 흔하지 않은가.

⑥ 교과서에 싣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걸 발판삼아서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⑦ 교과서에 싣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될 수는 없는데, 그 교과서가 주인공의 활동을 옥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순전히 사견(私見)으로만 이야기하면, 그런 인물을 교과서에 싣는 것은 사실은 그 주인공에게 실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가 할 일은 아직 헤아릴 수 없이 많을지도 모르고, 그 실적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일을 꿈꾸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아닐까 싶은데, 교과서에 실리면 나중에는 오히려 비난을 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교과서에까지 실렸는데 뭐 저럴까?"). 농담 같긴 하지만, 필자 같으면 이미 위에서 그런 예시를 한 바와 같이 당장 무슨 좋은 자리를 꿈꾸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 사례 A : 독도 의용 수비대 이야기

 

 

6·25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고향 울릉도를 찾은 국군 상이용사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왔지만 다시 독도로 나서게 되었다. 우리 어부들이 일본 순시선의 방해로 독도 주변의 바다에서 마음 놓고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도가 그들의 영토라는 주장에 참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이용사들이 예비역 특무 상사 홍순칠 씨를 대장으로 하여 수비대를 결성하자, 용기 있는 몇몇 어부들도 스스로 수비 대원이 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하여 조직된 수비대 대원들은 전쟁터에 나가 싸운 경험이 풍부하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철 같았다. 그러나 식량도 없고 무기조차 없었다.

…(후략)…

 

1996년 9월 1일에 초판이 발행된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사회과 탐구> 교과서에 실린 독도 의용 수비대 실화.**

 

'해안과 섬 지역의 생활'이 주제였는데, 어느 월간지 부록에서 "6·25때 부상을 입고 고향 울릉도에 돌아온 상이용사들과 젊은 어민들은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함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한반도의 동쪽 끝을 지켰다"는 '1954년 독도 수비대 창설' 이야기를 옮겼다.***

그해 가을 어느 날, 누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며 휴게실로 내려갔더니 초로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홍순칠 대장의 아내입니다."

"아, 예."('내가 무슨 얘기를 잘못 썼나?' 오류 발생에 대한 노이로제 발동!)

"선생님, 고맙습니다! 홍 대장이 하늘나라에서 드디어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얘기가 교과서에까지 실렸으니까요."

순간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그 휴게실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셨는데 그 값은 기어이 그분이 계산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혹 독도에 가보고 싶으면 연락 주세요. 그것만은 약속해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독도는 아무나 드나드는 때가 아니어서 필자에게는 참 특별한 선물이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고, 1999년 가을, 해군 초청 행사에 참여해서 독도를 둘러보며 그분을 생각했다. 필자는 그날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홍순칠 대장은 그런 분을 만났기 때문에 그처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날 우리의 그 만남에 대해 가슴 더 깊은 곳에 들어 있던 이야기도 꺼내야 하겠다. 나는 모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날아갈 것 같았다.

'아, 나도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분명하구나! 더구나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냈구나! 그렇다면 내가 편수관이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한 가지 더 있다. 정작 이것이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일 때문에 내가 그분을 찾지 않는다면 그분이 나를 찾을 일도 없을 것이므로 홀가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홍순칠 대장이 무슨 다른 일을 벌일 까닭이야 없지 않은가!(부디 이렇게 말하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시기를……).

 

 

□ 사례 B : 나무 할아버지 이야기

 

 

전라북도 임실군의 성수산에는 '조림왕'으로 불리는 나무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낙엽송 20만 그루, 향나무 10만 그루 등 약 33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40년 동안 잘 가꾸어, 오늘날 숲의 왕국을 이룩하였다.

할아버지는 학생들이 나무를 가꾸고, 베어 내고, 다듬는 등 여러 가지 실습을 할 수 있는 산림 연수원도 세웠다. 또, 수영장 등 체육 시설, 자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관광 휴양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할아버지는 "나무를 심는 일은 자식까지 고생시킨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15년만 지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후략)…

 

1997년 3월 1일에 초판이 발행된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사회과 탐구> 교과서에 실린 김한태 씨 이야기.**** 그가 나무를 심고 자연휴양림을 가꾼 이야기를 소개한 신문 기사를 딱 600자로 간추려 실었다.

오늘 인터넷 검색창에 필자가 붙여준 별명 "나무 할아버지"를 넣어보고 16년 전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아예 "나무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명예박사학위도 받았고, 관련 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청와대에 초청되어 대통령 앞에서도 "나무 할아버지"로 소개되었다. 신문에 나거나 하여 세상에 알려진 다른 '조림왕(造林王)'들이 보면 부러울 것은 물론, 교과서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97년 가을, 이 주인공도 필자를 만나러왔다. 교과서에 나오자마자 아이 할 것 없이 "나무 할아버지!" "나무 할아버지!" 하고 부르게 된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고 했으며, 일부러 가져온 훈장과 유엔에서 받은 상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때까지는 아직 자신이 훨씬 더 유명해져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필자는 그분에게 아주 주제넘은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부디 다른 일은 아예 생각지도 마시고, 남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일은 단 한 가지도 저지르지 마시고……" 차마 그렇게 직설적으로 부탁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차 한 잔만 대접하고 아무 부탁도 없이 그대로 보내버리고 나서 후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털어놓고 말하면, '이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나?'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필자는 그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여 우물쭈물 몇 마디 두서도 없는 말을 이어가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고 그분도 그걸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었다.

 

그분이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사실을 인터넷에서 확인했다. 그동안 줄곧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감시하듯 하진 않았지만, 오로지 한 길을 살아가신 그분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고, 그때 주제넘고 부질없는 말씀들을 버릇없이 늘어놓은 것이 송구스럽기 짝이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사례에서도 가슴속을 보여 달라고 한다면 "이제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듭 송구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오죽하면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겠는가!

 

 

□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고 싶은 분들께

 

 

'교과서에 이름이 실리고 싶은 분'……, 이게 말이 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사례 A, B를 꼭 좀 읽어보고 신청(?)하기 바란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웬만하면 참으십시오. 나중에, 세월이 지난 후에 평가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당신이나 집필자나 다 마음 편하니까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하니까요."

  

 

 

 

 

 

 

 

이 글이 실린 자료의 표지가 참 곱지 않습니까? 게다가 딱 네 가지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저렇게 제 글을 내세웠습니다. "교과서 이야기 : 교과서에 실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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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13년 8월 14일 A26면.

** 교육부(1996.9.1), 사회과 탐구 4-2, 104~105쪽.

*** 조선일보사 월간조선 1995년 신년호 특별부록 '피·땀·눈물로 쓴 해방 50년 우리 시대의 내용증명 한국인의 성적표', 98~99쪽

**** 교육부(1997.3.1), 사회과 탐구 5-1, 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