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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과서, 정확하면 충분한가

by 답설재 2013. 6. 28.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육광장』!

  권위 있는 계간지여서 글이 실리면 영광이겠지? 원고료도 좀 낫게 주겠지? 그러면서 시작했는데, 두 번째가 됐습니다. 다음에 가을호에도 또 써달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것들(영광, 원고료)에 대한 실망도 실망이지만, 그 욕심은 온데간데 없고, 혹 그 요청이 또 오면 이번엔 뭘 쓸까? 그것만 걱정입니다.

 

  다음은 그 저널 2013. SUMMER, Vol. 48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교과서 이야기 2>

 

 

교과서, 정확하면 충분한가?

 

 

  

     □ 유학파들의 이야기 “미국 교과서”, “외국 교과서”

 

  A대 과학과 B교수가 교육부 편수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데 한손을 주머니에 넣은 건 정부청사는 괜히 좀 어려운 곳이긴 하지만 그걸 감추고 싶다는 심리를 보여준다.

  “교과서가 너무 어려워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질문을 하는데 과학을 전공한 나도 답을 할 수가 없으니……. 미국 교과서는 그렇지 않아요. …….”

  그럴 것이다. 미국 교과서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주장을 듣고 싶지 않았고, 대뜸 한 수 가르치려드는 그 건방진 태도부터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말이야! 초등교사 자격증 갖고 있어? 교수는 초등학교 아이들도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구태여 자격증을 줄 필요가 없지 않겠어? 당신은 아마 유치원 아이들은 단 한 시간도 가르칠 수 없을 걸? 어때? 뭘 그렇게 잘난 척하나! 미국 교과서? 우리 교과서는 매년 지급하는 1회용이고, 미국은 6~8년간 쓰잖아. 다를 수밖에! 어디서 감히…….”

  그렇게 대어들었다면 좋았으련만……. 모두들 겸연쩍은 표정으로 잘난 척해대는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서 속이 상했고,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언젠가 미국 교과서보다 나은 교과서를 만들어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렇지만 그 편수국은 곧 사라져버렸고, 그 다짐도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 말씀 그대로 당장 반영한 한 할머니의 충고

 

  변명할 것 없는, 구태여 변명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충고도 있었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손녀에게 당했다는 할머니의 사연이다.

  “간호사도 좋지만 의사도 좋은데…….” 그러자 손녀가 깨우쳐주더란다. “할머니! 여기 이 교과서들 다 찾아보세요. 의사는 다 남자, 간호사는 다 여자요. 아시겠어요?”

  그때의 삽화는 정말 그랬다. 의사는 ‘당연히’ 남성이었고, 간호사는 ‘당연히’ 여성이었다. 그런 삽화는 ‘그런’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건 고쳐야 마땅한 고정관념이었다.

 

  ‘그런’ 삽화는 부지기수였다.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소파에서 신문을 펴들고 앉아 있고, 아이는 숙제를 하는, 그동안 ‘행복의 상징’이었던 삽화가 돌연 우리를 부끄럽게 했고, 온갖 직업인을 그린 삽화 중에 유독 교사와 간호사만 여성인 삽화도 우리를 쑥스럽게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곳에서 연락이 오면, 이번에는 또 어느 교과서의 무엇에 대한 그릇된 사고방식이 들통 났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고정관념에 의한 흔적이 어디 쉽게 지워지고 하루아침에 다 걷어낼 수 있는 것들이겠는가.

 

 

 

     □ 고정관념과의 싸움 : 우리의 전략은 한심한 수준이다.

 

  그런 경험들은 곧 고정관념에 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고, 그러면서도 ‘일체의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지긋지긋한 싸움을 펼쳤다.

  ‘그래, 좋아! 싸우는 수밖에! 한 문장 한 문장 다 뒤집어보고, 그림, 사진, 도표, 뭐든 냉정하게, 초면인 것처럼 다시 살펴보자!’

  이미 여러 번 읽은 문장을 다시 읽고 또 읽고, 드디어 어느 페이지인지까지 다 외우게 된 삽화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 ‘여기 이 문장 속에 무슨 함정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가령, 이런 식이다.) “이리 온. 지금은 두 사람뿐이구나. 이 늙은 할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보렴.”1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금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건 (우리의 기대대로) ‘손녀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하더라도, 그 중의 단 한 명이라도 ‘이 늙은 할미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자고 하는구나, 하고 해석한다면 어떻게 하나…….

 

  ▶ ‘이 사진 속에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가령 숭례문 사진이 그렇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의심 없이 ‘남대문’이라고 했는데, 어느 날 유력한 문화재 전문가가 ‘남대문’이 아니라고 했다. 굳이 ‘남대문’이라고 하려면 ‘서울 남대문’이라고 해야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숭례문’이 옳다는 것이었다.

 

  신문기사를 믿었다가 호되게 당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도 어느 교과서에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고 하고(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한(이것 역시 진실이다!) 기사를 인용했다가 표현상의 오류를 지적한 다른 신문기사 때문에 당장 수정한 사례도 있었다. 언론을 신뢰하는(그럼 불신하라는 말인가!), 또 언론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는 ‘한심한’(?) 고정관념에 따른 오류의 사례이다.

 

 

     □ 고정관념의 행패, 그것은 아무리 많은 눈도 피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세상의 직업을 아주 단순하게 구분하여 일곱 가지로 나타낸 것으로,2 표현상의 미흡함이 아닌 명백한 오류가 들어 있다.

 

    다음은 여러 가지 직업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 논밭이나 산, 바다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얻어 내는 일

  ㉡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일

  ㉢ 여러 가지 사무를 보는 일

  ㉤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

  ㉥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로 하는 일

  ㉦ 많은 사람을 거느리며 일을 계획하고 감독하는 일

  ㉧ 편리한 생활이나 즐거운 생활을 위하여 남을 돕는 일

 

  2년간 연구·집필, 수정·보완, 현장검토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확인하고, 또 읽고 확인하여 정리했으나, 1991년 7월 어느 날 새벽 3시(“하루만!” “한 시간만!” “한번만!” 더 확인하고 싶어서 윤전기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며칠간 밤새워 돌리게 한다), 어느 고마운 인쇄공이 필자의 잠을 깨워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온 내용이다. 윤전기는 몇 시간 돌아가지 않았는데 이미 25만부를 찍었다고 했다. 오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으면 보이겠지만, ㉠~㉦ 사이에 ㉣이 누락되고, 그 대신 없어야 마땅한 ㉧이 ‘버젓이’ 자리 잡은 것이었다.

 

  책을 만드는 그 2년 730일간, 집필진, 연구진, 심의진, 출판사 편집진, 실험·연구학교 학생들, 교사들, 심지어 일부 열성적인 학부모들…… 그 수많은 눈을 다 피한 저 번호가, 이제 며칠 후면 전국의 학생들에게 보급될 마지막 순간에 “나 여기 있다!”고 신고(?)한 것이다. 그 오류는 누구도 번호가 잘못되었을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을 것이란 우리의 고정관념 혹은 방심을 노린 것이다. 그건 누구의 책무성에 관한 것일까? 다만 모두들 무언가를 믿고 눈길을 주지 않는 곳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최근 국정 교과서에 일본인들을 찍은 사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교육부 심의에 구멍이 뚫렸다!”고도 했다. 이런 걸 잡아내라고 심의회를 여는데 그걸 놓쳤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심의위원 중에는 “나도 남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눈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무슨 ‘숨은그림찾기’를 잘못한 느낌”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진(가령, 표지에 넣을 사진)은 전문 업체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집필진과 심의진으로부터 “괜찮다” “좋다”는 평가를 받는 사진 한 장을 구하려면 100~200장은 촬영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통과된다는 보장만 있으면 해볼 만한 것이 사진 작업이다.

  그러므로 ‘썩 괜찮은’ 사진을 입수해서 선을 보이면, 그 다음 과정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가게 되고, 연구·집필진, 심의진, 출판사 편집진, 실험연구학교 학생들, 교사들…… 수많은 눈들이 ‘오죽 신경 써서 구했을까?’ 싶은 관점으로 넘겨버리는 경향을 배제하기가 어렵다. 그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거 혹 일본 사람들 아니야?”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들, 교과서 심의진들은, 이 상황에 어디 또 하필이면 일본인들 사진이 들어 있는 거나 아닌지, 사진만 나오면 도끼눈으로 쳐다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정관념은 지금 또 다른 유형의 오류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다.

 

 

     □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목표는 정확한 교과서인가?

 

  정확성은 아주 좋은 덕목이다. 더구나 교과서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은 교과서와 같아”라는 말은 이러한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우리나라 언론은 단순한 사실, 맞춤법·띄어쓰기 한두 군데만 틀려도 “오류투성이”라고 지적한다. 그 지적은 한순간에 교과서의 품위와 수준을 나락(奈落)으로 떨어뜨린다. 오죽하면 교과서 심사 과정에 내용, 표현·표기 등의 기초적·기본적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기초조사를 두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감수 과정을 추가하게 되었을까. 띄어쓰기만 해도 그렇다. 전 국립국어원장은 ‘큰돈’은 ○, ‘작은돈’은 ×라는 걸 예시하며 “나도 자신 없다”고 고백했고, 어느 교과서 윤문 전문가는 “아침에는 띄우고 저녁에는 붙이는 짓에 일생을 바쳤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대충 혹은 아무렇게나 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그러나 정확성이 교과서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아니다. 정확성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당연한 덕목은 될지언정 그런 교과서가 결코 완벽한 교과서는 아니다. 가령 『남자의 교과서』 『가장 체계적인 인문학 교과서』 『은행 교과서』라는 책이름은 ‘필수적’ ‘핵심적’ ‘기본적’ 등의 의미를 지녀서 뒤집어보면 교과서는 ‘훌륭한’ ‘멋진’ ‘권위를 지녀도 좋은’ ‘최고의’ 책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 책의 내용이 어떻게 질서정연하지 않고, 애매하거나 흐릿할 수도 있고, 일부의 취향에 따라 어떤 내용이 들어가거나 빠질 수도 있겠는가. 기록해 두어야 할 고언(苦言)이 있다.

 

  “국민들이 책을 읽어야 그 속에서 교과서를 벗어난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무한한 인재가 나올 수 있습니다.”3

 

  교과서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줄 말이다. 그러나 굳이 이 견해를 부정하거나 구구한 해명을 할 것까지는 없다. 이 또한 ‘교과서’에 대한 인상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창의성 교육은 지능지수가 높고 수학·과학 등 일부 과목을 잘 하는 학생들에게 특혜, 전유물로 주어지고, 인성 교육은 학교장 훈화나 한두 차례 특강쯤에 맡겨두고 싶은 어처구니없는 관점, 그런 관점을 허용하는 교과서라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겠는가는 짚어봐야 한다.

 

 

 

  필자 소개 교육부 사회과 편수관·교육과정정책과장, 경기도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퇴임 후에는 교과서 연구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많이 혹은 귀신같이’ 설명해 주기보다는 사고력, 창의력을 길러주는 것이 ‘천 배’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가르쳐야 하는 것들'인지 의심하고 있다.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본에서 고른 문장.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본문으로]
  2. 교육부, 『사회과 탐구 4-2』(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1), 144쪽. [본문으로]
  3. 문화일보, 2013.4.23. 29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맞은 박은주 출판인회장 '케이북 시대 열어 출판 한류 꽃피우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