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시·도 교육청 교과서 주문·공급, 가격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관들과 함께 미래엔(주) 공장을 견학했습니다.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했지만 참석자는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연수는 무슨……"
"게다가 학생들도 아니고 견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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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집필하는 교원들을 데리고 교과서 출판사 시설·설비를 견학하는 일을 하나의 연수 과정으로 시작한 것은, 아마도 내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게 어언 20년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주로 교과서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가들, 교과서 연수를 받는 교원들을 데리고 1년에 서너 차례 견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저 공장의 기계들, 그 기계들 앞에서 일하는 분들은, 아주 낯익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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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장까지 둘러봐야 하겠습니까?
교과서가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實感)하기 위해서입니다.
교과서의 문장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이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경우에는 그걸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힘차게,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들, 그 앞에서, 그 소음 속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는 공장을 보고 나서 원고 집필, 편집에 저절로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되었고, 드디어 혼신을 다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남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교사 시절이나 교장을 할 때 "우리 반 아이들은 무조건 데리고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학교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좋겠다"고 주장한 이유도 이와 같았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글자가 없고 따라서 책이 없던 옛날에는 "교실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글자가 생기고 책이 나오니까 굳이 나갈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아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보십시오, 아예 나가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뭘 좀 한다는 교수들이 쓰는 용어 중에 'field study'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나갈만 하면 나가야 하는데 소풍 때만 나가거나 교육청에서 돈을 주어서 나가게 되면 그건 정말이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 이 이야기를 더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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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출판사도 기업체인데, 기업체에 교원들, 행정가들을 데리고 가?"
"무슨 로비를 받았다고 오해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걸 걱정하는 사람은, 그런 기업체에서 로비를 하면 '이게 웬 떡인가!' 하고 얼른 받아들일 것입니다.
나에게는 교과서 출판사, 특히 기계가 돌아가는 저 곳은 '신성한 곳'입니다. 원고가 들어가고 '교과서'가 나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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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저 곳이 신성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각 시·도별로 교과서를 만들 때, 2년간의 산고 끝에 이제 마지막으로 인쇄를 하는 과정에서 아예 사무실에는 출근도 하지 않고 딱 한 달 동안 저 공장에서 공장 직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 일에 미쳐버려서 큰 표창을 하나 준다고 공적조서를 써내라고 했는데, 그걸 쓸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말았습니다. 지내놓고 보니까, 사실은, 까짓것은 받아봤자 별 소용도 없습니다. 교단을 영영 떠나올 때 받은 훈장인가 뭔가는, 내가 도대체 어디에 두었는지 단 한 번도 그걸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교과서 출판사의 저 공장은, 내가 청춘의 마지막 한 시기를 '아주 대취(大醉)하여 보낸', 그러므로 온갖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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