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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정수남 선생님께

by 답설재 2013. 7. 7.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선생님 반 교생?

45년 전 일이고, 그나마 몇 번 뵙지도 못해서 면목은 없지만, 잊지 않으셨을 것 같았습니다. '아, 그 귀찮았던 녀석!" 하시더라도, 저로서는 함께 거닐어주신 그 강변의 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습 이튿날부터 보이지 않자, 여러 번 연락을 주셔서 마련된 만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름다웠고, 신혼이라고 하신 것 같고, 댁은 서울이라고 하셨습니다.

 

"강요한다고 잘 참여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유치하겠죠?"

"실습에 잘 참여하지 않아도 실습 점수를 주어야 하는 경우에 대해 우리 학교 교장 교감은 물론, 대학 측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죠. 흉내라도 내어주면 좋겠고, 어려우면 누나에게 놀러간다고 생각하고라도 오면 좋겠어요. 말하자면 나를 보여줄 시간을 달라는 거죠."

 

그렇지만 그 교실을 몇 번이나 더 찾아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그 대학이 싫었습니다. 그 대학이 저를 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입시에 실패해서 빈둥거리다가 학비가 거의 들지 않고 2년만 다니면 취직이 된다는 친구의 권유에 끌려가다시피 한 학교였고, 가자마자 '내가 이런 곳엘 왜?' 하고 있었고,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차일피일, 우유부단해서, 대책 없이, 밤낮없이, 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건 그 대학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과학교육방법론이 아니라 '받아쓰기'였습니다. 말하자면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첫 시간부터 초등학교 1학년처럼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과학'은 과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과학 탐구 능력과 과학적 태도를 함양하여 창의적이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교과이다.

'과학'은 초등학교 1, 2학년의 슬기로운 생활과 고등학교 선택 교육과정의 과학, 물리 I, 화학 I, 생명과학 I, 지구과학 I, 물리Ⅱ, 화학Ⅱ, 생명과학 Ⅱ, 지구과학 Ⅱ 과목과 연계되도록 구성한다.

'과학'의 내용은 '물질과 에너지'와 '생명과 지구'의 2개 분야로 구성하되, 기본 개념과 탐구 과정이 학년군과 분야 간에 연계되도록 한다.

그리고 과학을 기술, 공학, 예술, 수학 등 다른 교과와 관련지어 통합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신장시키도록 한다.

'과학'에서는 학생 수준에 따라 관찰, 실험, 조사, 토론 등 다양한 탐구 활동 중심의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개별 활동뿐만 아니라 모둠활동을 통해 비판성, 개방성, 정직성, 객관성, 협동성 등 과학적 태도와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도록 한다.

'과학'의 기본 개념을 학습자의 경험과 친근한 상황 속에서 지도하고, 학습한 지식과 탐구 방법으로 과학적 문제나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길러 과학이 기술의 발달과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이들이 상호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자연 현상과 사물에 대하여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여 과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과학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길러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과학적 소양을 기른다.

 

가. 자연 현상을 탐구하여 과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한다.

나.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을 기른다.

다. 자연 현상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기른다.

라. 과학, 기술, 사회의 관계를 인식한다.

 

 

 

 

긴장된 숨소리와 볼펜 소리만 음산한 그 강의실…… 그걸 그대로 암기하게 해서 시험지에 토해 내도록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받아쓰기(불러주기) 기법에 익숙했습니다. 느릿느릿 불러주지 않았고, 딴 짓 하지 않고, 딴 생각 하지 않고, 집중해서 받아쓰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속도였습니다.

 

좀 저속한 표현을 하겠습니다. 예비교사들에게조차 교육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못하는, 명색이 교수이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밖에 보여줄 수 없는, 그럼에도 분명 직업은 '교수'인 그가 악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그런 교수가 그 한 사람뿐이었다면 웃고 말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육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스스로 만들어 각인했지만, 그러나 '교사가 될 때까지 이런 강의를 듣고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이걸 참고 교사가 될 수 있기나 할까?' 싶었습니다. 암담하여, 밤안개 자욱한 그 소도시의 밤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대학입시 실패가 이미 가물가물한 옛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되돌릴 수도 없고, 피할 곳도 없고, 찾아갈 곳도 없는 그 세월이 암담했습니다.

 

 

 

 

제가 실습에만 불성실했던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식교육이라는 이름아래 자행되는 주입식 교육을 증오합니다.

대학입시 준비교육을 증오하고, 그런 방법으로 입시를 치러야 하는, 점점 더 수렁에 빠지고 있는 듯한 이 현실도 증오합니다. 드디어 교과서를 잘 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는, 선생님과 함께 즐겁게 공부하면 된다는 말은 고사하고 선생님 설명을 잘 들으면 된다는 말조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더욱 혐오합니다.

 

그런 교육을 못 본 체하는 이 나라의 교육행정가들을 증오합니다. 아무리 헌금을 많이 내고 간절히 빌어도 그들을 용서하여 천국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들의 죽음을 심판하는 자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다면(그들을 천국에 보내주면) 그 또한 범죄자로서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교육관이, 그런 교육행정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칫하면, 결례를 할 것 같아서 그만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곧잘 흥분하는 셈이지만, 교생이, 담임선생님께,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까. 다만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뻔뻔스럽게도 그동안 선생님 성함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정·수·남'이지 싶어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이제 와서 선생님 성함을 떠올리게 된 것은 ―그동안 제가 선생님 성함을 잊고 지냈다고 했지만, 사실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선생님을 늘 그리워하고 '교사'로서의 책무성을 감당하는 것에 대해서 선생님을 의지하며 지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제가 연전에 41년의 교직생활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우선 "어떻게 교사가 될 수 있었느냐?" 물으실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연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심지어 첫 발령을 받고도 한참동안 그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로 내가 여기에서, 학교라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기나 할까?'

 

 

 

 

그런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걸핏하면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불러 대서 그걸 견뎌낼 수가 없었습니다. 가짜교사가 어떻게 나라에서 주는 봉급을 받겠습니까?

'선생님이라니? 내가? 내가 어떻게?'

'얘들이 뭘 보고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하는 걸까? 아직은 내가 영 엉망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저는 엉겁결에 '선생님'이 되어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교육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 이러다간 제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여 드디어 독학을 시작했다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덧붙이면 제가 대학에 빚진 것이 있습니다. '받아쓰기'를 잘 하지 않았는데도 최소한의 시험점수를 받은 것, 그렇게 해서 졸업장을 받은 것입니다. 그걸 주지 않으면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 하는 받아쓰기 따위를 잘 하지 않았다고 졸업장을 주지 않느냐?"고 대어들 생각도 조금은 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한동안, 대학이 제게 빚진 것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르치지도 않고 가르쳤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 쓸데없는 생각들일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먼 나라로 이민을 가셨을 것 같은, 일찍 교직을 그만두셨을 것 같은 '공연한' 짐작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워서, ① 어떻게 실습점수를 줄 생각을 하셨는지, ② 그 실습을 지금이라도 좀 받을 수 없을지 여쭈어보고 싶다는 연락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께서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은 그 시절 제 번민의 골짜기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선생님의 교생입니다. 두고두고 부끄러운 실습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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