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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고모는 할머니야, 아기야?"

by 답설재 2013. 6. 12.

세 살짜리가 할머니, 고모, 사촌오빠와 함께 자동차 뒷자리에 탔습니다.

"고모는 할머니야, 아기야?"

제 고모가 그렇게 묻자 대뜸 대답합니다.

"할머니!"

그 대답에 호호거리며 웃습니다.

'별 싱거운……'

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습니다. 아직 할머니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처지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까지는 30대니까 그 대답이 우스울 것입니다. 만약 '할머니'가 맞다면 우스울 리가 없습니다.

 

 

 

 

그러더니 또 묻습니다.

"오빠는 할머니야, 아기야?"

"……"

"할머니야, 아기야? 응?"

"……"

 

순간, 세 살짜리의 입장이 되어봅니다.

'할머니라고 하는 게 좋을까, 아기라고 하는 게 좋을까?'

'할머니는 여잔데?'

'그럼, 아기?'

'아기는 어린애잖아.'

'이런 낭패가 있나?'

 

분명한 것은, 아직 이렇게 대답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할머니도 아기도 아니야."

 

그 질문은 가령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기는가?"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경우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정답은 "호랑이"도 "사자"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책을 봤더니, 1:1로 붙으면 호랑이가 이길 가능성이 높답니다. 그런데 1:1로 붙을 리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호랑이는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사자는 대체로 떼를 지어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랑이와 사자 간의 싸움은 사자편이 이기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건 물음의 의도를 비켜간 답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호랑이와 사자는 서식 지역이 전혀 달라서 아예 싸움이 벌어질 수가 없다는 설명이 결론이었습니다.

 

 

 

 

나는 '한국의 교육'이 흡사 "고모는 할머니야, 아기야?" "오빠는 할머니야, 아기야?"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기는가?"와 같은 물음에 답하게 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갔습니다.

 

다음 중에서 하나만 가려라. ①②③④⑤

다음 중에서 ~인 것은? ①②③④⑤

다음 중에서 ~이 아닌 것은? ①②③④⑤

다음은 ~인가, 아닌가? ○×

 

정말로 이렇게 해야 속이 시원한지, 꼭 이렇게 해야 하는지, 어느 나라가 이렇게 해서 나라가 잘 되었는지, 공부를 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그나마 행복해 하는지, 이렇게 하면서 뭘 가지고 이 나라의 교육을 자랑하는지……  아니, 어느 정도까지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들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믿는 "일부" 교수들 말고는 누가 이런 교육을 좋아하는지,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들, 교육행정가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나 한지, 좀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대답을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가지고 그 혹독한 세월을 보내게 하는 이유!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믿는 이유!

그 이유를 대라고 외치고 싶은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생들 마음대로 답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그게 학생 중심 교육입니다.

이쪽에서 제시한 ①②③④⑤ 중에서 골라야 하는 교육은 '학생 중심'이 아닙니다. 그런 일에 치중하는 건 교육도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공격을 받을까봐 망설여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곧 도착하게 되었으니까 그건 교육도 아니라는 생각은 유보하고, 결코 '학생 중심'이 아니라는 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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