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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현장학습에 대하여

by 답설재 2013. 5. 19.

현장학습을 흔히 '체험학습'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건 사실은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좀 꼬아서 이야기하면 현장에 가서도 체험학습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체험학습이라고 해서 굳이 현장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이 사라진 자리에, 그 뭐죠? 자주 바뀌기도 하지만, 자꾸 '창체'라고들 하니까………… 아, '창의적 체험학습'! 그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게 별로 좋지 않은 교육영역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창의적인 게 좋다면, 그럼 '창의적 국어', '창의적 사회', '창의적 수학'……은 어떨까요? 그 이름을 지은 학자에게 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창의적 체험학습'이라…………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지난해 10월 마지막 날, '이런 체험학습 어때요?'라는 제목의 TV 뉴스를 봤습니다. 대전 어느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시험을 본 다음날, 등산을 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아주 즐거운 표정들이었지만, 제 생각으로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체험학습'? 그게 무슨……

무슨 설명을 하겠습니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든 학습주제는 체험학습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매일 매시간 체험학습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소풍'을 보낸 교장이나 그 뉴스를 전한 기자는 뭐라고 할까요?

"미쳤니? 매일 놀러나 가게?"

아니면 이럴까요? "체험학습만 하면, 그럼 공부는 언제 하지?"

 

'소풍'이라는 말은 어떤 나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까? 정말 잘 몰라서 묻는데, '소풍'을 그냥 '소풍'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걸 굳이 '체험학습'이라고 새로 포장을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하기야 요즘은 1박2일로 술도 마시고 좀 쉬러 가는 걸 '웍샵'이라고 하는 게 아주 일반화되어 '웍샵'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할 지경이 되었으니까 '소풍'도 '소풍'이라고 하기가 민망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로 소풍을 가고 싶으면 그럼 뭐라고 해야 합니까?

진짜로 웍샵을 하고 싶으면 뭐라고 이름붙여야 합니까?

 

 

 

 

체험학습에 대하여 경계할 것이 있습니다.

'체험학습'은 "옛날의 그 소풍" "즐거운 야외학습"이라는 의식입니다. 말하자면 경복궁이나 남산 같은 곳으로 "바람 쐬러 가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바람 쐬러?"

그렇다면 배울 것이 많은 곳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가니까 아이들은 "경복궁은 이미 다녀왔어요!" 하고 불평을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와서 설명을 잘 듣고 가는데, 우리 아이들은 "바람 쐬러" 다녀와서는 다음에 또 가게 되면 다녀왔다고 왜 거길 또 가겠느냐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교육청에서 예산을 많이 주면 체험학습을 자주 가는 아주 기이한 현상입니다. 그건 정말…… 그렇다면 정말이지, 그 예산을 받지 못하는 학교는 교육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포기하라는 것인지, 아이들이, 학부모들이, 항의하면 뭐라고 대답하라는 것인지…… 그걸 교육적으로,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하며 살아가라는 것인지…………

 

저는 교장을 할 때, 그런 예산 한 푼도 없이 학년별로 연간 6회 이상의 현장학습을 실시했습니다. 언제 소개할 기회를 갖겠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정말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그것은, 말하자면 '현장체험학습'이고, 학교·교실에서는 평소에도 가능한 한 체험학습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아이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견뎌내며" 허구한 날 그 설명을 경청해야 하는 '교육'── 그것조차 '교육'이라고 불러준다면, 그런 교육을 하는 나라는 세상에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시설·환경 중심의 교육행정에 힘쓰고, 지시·전달 중심의 교육행정에 힘쓰는 동안, 그리하여 교육의 '하드웨어'로는 세계 최강국이 되는 동안, 다른 나라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학습,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재미있어 하는 교육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인 PISA나 TIMMS 결과를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흥미도는 과목(영역)에 따라 진짜로 꼴찌이거나 거의 꼴찌 수준입니다.

 

 

 

 

가브리엘 루아의 소설 「삼리윙,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에서 본 장면입니다.1 이런 활동이 대표적인 체험학습일 것입니다.

 

위원회의 한 부인은 삼리윙의 출신을 고려하여 홀을 중국식 등으로 장식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일은 학교의 여선생님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 그녀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그 모델을 찾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학생들을 시켜서 반짝이는 색종이를 많이 오려내게 했다. 교실이 온통 즐거움에 넘쳤다. 아이들은 본에 따라 종이를 자르고 조합하여 풀로 붙였다. 여선생님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쌀을 많이 생산하는 중국은 툭하면 홍수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고관들과 쿨리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후자들은 전자들을 인력거에 태워서 밀고 다닌다고 했다.(75)

 

『세상 끝의 정원』에 실린 소설 「삼리윙,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에서 주인공 삼리윙이 그 마을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나라, 이런 학교에서는 평소에도 자주 이런 학습을 전개할 것이 분명하고, 이런 학습을 하는 것이 마땅할 때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실시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캐나다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세상의 어느 나라나 이렇지 않을까요?

 

이건 좀 무관한 이야기지만, 이 소설을 쓴 작가 가브리엘 루아는 전직 교사입니다.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삼리윙이 정착할 마을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펴보는 다음의 장면에서도 그걸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학교. 건물 밖으로 쏟아져나온 한 무리의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삼리윙도 갑작스레 노골적인 흥미를 느낀 듯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한동안 인도 가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양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아이들의 떠들썩한 놀이가 계속되는 동안 그는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을 완전히 따돌려버리지 않는 광경이 있어 그가 발걸음을 멈춘 채 이렇게 마음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이 대륙에 도착한 이래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뛰어 노는 이 어린 아이들은 그의 존재가 뚜렷하게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별로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나 뚜렷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떤 젊은 여자가 학교 문턱에 나타나서 종을 쳤다. 아이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삼리윙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23~24)

 

 

 

 

흡사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잘 번역된 『도살장 사람들』에서도 부러운 현장학습 장면을 보았습니다.2 하필이면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포함되어 있어서 다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그 부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사랑에 빠져 있었던 시절에는 모든 게 달랐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 네가 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직업이야"라고 누누이 혼자 중얼거렸고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할머니를 다정하게 포옹했고 이 동네도 정말 평화롭고 살기 좋은 아늑한 곳이라고 믿었다.(89)

 

어쩌면 저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이제 현장학습 부분입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도살장에서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거기에서 일을 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녀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격주로 금요일마다 현장학습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는 바람에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도살장에서는 요일별로 모든 연령대의 방문객을 받았다. 그녀가 데리고 오는 가장 어린 연령층의 방문객은 주로 동물 구경을 하고 암소는 "음메" 하고 울고 양은 "메" 하고 운다는 등, 주로 그런 것들을 배우러 온다. 보다 머리가 큰 아이들은 주로 기술적인 것을 궁금해한다. 자동장치들,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기계, 흔들거리고 움직이는 전기, 수압, 공기압력을 이용한 장치들 같은 것에 흥미를 느낀다.

조만간 우리 처지에 처할 법한 또래의 연령층은 보다 구체적인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고 모든 것을 아주 자세히 알고 파고들고자 했다. 그들은 긴 질문 목록을 가지고 나타났다. 메모를 끄적거리는 것을 봐서 나중에 발표도 할 모양이었다. "마취는 어떤 식으로 하지요? 피는 어떻게 뽑아내는지? 내장 제거는? 열탕식 털 뿝기는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힘줄 제거기는 어떻게 쓰는 건지?" 그들은 시범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한 시간에 몇 마리나 죽일 수 있나요? 하루 몇 시간 근무하는지요? 그리고 이것저것 다 합하면 얼마나 버나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그들을 보며 나는 "도무지 젊은 애들은 없네!"라고 중얼거렸다.(89~92)

 

 

이런 것이라야 현장학습다운 현장학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장에 나가서 교과서 내용을 배워야 한다면 그게 무슨 현장학습이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그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나 하면……

 

내가 안달하면서 기다리는 딱 하루뿐인 날은 당연히 유치원생 방문일이다. 왜냐하면 그날에야 그녀를 볼 수 있고 비록 애들이 쉴 새 없이 다리 사이로 기어 다니는 와중이지만 그녀와 잠깐 이야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들은 항상 아무 거나 만지고 건드리면 안 되는 데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위험한 곳을 헤집고 다닌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퍼붓는다. "선생님, 왜 그런 거죠? 왜 그럴까요?" 그러면 그녀는 "아저씨가 가르쳐 줄 거야" 라고 했고 나는 그들에게 돼지를 어떻게 소시지 속에 구겨 넣는지, 그렇게 해도 돼지들이 왜 아파하지 않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92)

 

해피엔딩이라면 좋겠는데…… 도살장에서라도……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두고 유치원 현장학습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모르긴 합니다, 내년에도 그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또 나타날는지는.

 

 

 

 

 

2012.8.4.

 

 

 

2012.8.2. 스리랑카에서 온 시찰단

 

 

 

2012.9.7.

 

 

 

 

 

경복궁 현장학습 중인 신혼 부부. "힘들어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세상 끝의 정원』(현대문학, 2004).
  2. 조엘 에글로프 지음/이재룡 옮김/안규철 그림, 『도살장 사람들』(현대문학,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