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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문제아 상담, 정말 쉬운 일

by 답설재 2013. 4. 22.

 

 

 

 

 

<공감>이란 잡지의 만화입니다.

이 선생님은 문제아 상담에 이골이 난 것이 분명한데도 자신은 한 일이 없다고 잡아뗍니다. 아이들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 것뿐이랍니다.

만화가는 한술 더 떠서 그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정말 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렇게 하시는 선생님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선생님들이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교과서나 참고서, 문제집에 있는,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잘 설명하는 일입니다. 기가 막히지만 그걸 '교육'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거나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입부터 닫고 똑바로 앉아서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렇게 타이른 교육방법이 지금 이 시대에 와서는 그 어떤 교육학 강의보다 더 절실한 지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이게 아닌데?' 싶어서 자꾸 입을 열어 보려고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꾸중만 들으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한두 달, 일이 년이 지나면 그만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좀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선생님들께 그 이야기를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학습목표만 제시하면, 이야기할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학습과제를 제시하게 되고, 또 그 다음에는 활동 1, 2, 3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런 일들을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께서 묻는 것에 대답만 하면 됩니다.

 

"누가 한글을 만들었지요?"

"세종대왕~!!!"

 

그렇게 한 시간이 끝날 즈음에는 몇 가지 단편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아이들은 신이 난 체하면서 ○×나 ①②③④, 한두 가지 단어로 된 답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서 하루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갑니다. 또 그러다가 대학에 가는 날이 다가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하는 선생님들이 있긴 하지만, 그 선생님들조차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보다 더 긴요한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장을 그만두고 나올 무렵, 그 학교 선생님들께 회전의자를 구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르거든 부디 얼굴을 좀 돌려 주십시오. 회전의자니까 몸을 돌려 쳐다봐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교육은 바쁘면 잘 되지 않습니다. 바쁜데, 할 일이 많은데, 아이들이 부르면 대답이나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교육이 되겠습니까.

교육은 일단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들은 입을 닫고 내 이야기부터, 내 이야기나 들어보라!"

"내 설명을 잘 들어라!"

대부분의 사범대학, 교육대학 교수들처럼, 그렇게 가르치면, 내가 잘난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언제나 내 뒤를 따라와야 할 뿐입니다.

 

교장을 할 때, 나는 여러 선생님들께 일단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지부터 들어보라고 강조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러면 아이들은 한 시간 내내 이야기한다. 진도를 나갈 시간도 없어진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보자고 했었습니다. 그 선생님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때 내 부탁을 기억이나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선생님들께 이 만화 좀 보시라고 하면 좋을 텐데…………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는 교육자가 아닌 사람이 더 잘 아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본질만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만화가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교육자들이 더 잘 아는 건 교육행정, 교육정책, 교육제도일 뿐입니다.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서 교육학을 다 배운 선생님들은 왜 실천하기가 어려운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교육행정을 맡아서 선생님들을 정신 못차리게 하는 걸까요?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방해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큰일이지만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요.

 

교육행정가들은 이런 생각을 해보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아마 지금도 어디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걸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그래서 답답한 것입니다.

 

교육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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