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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교감은 무엇을 하는가?

by 답설재 2013. 3. 21.

새로 교감이 된 사람이 어떤 학교에 발령을 받았는가 싶어서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학교는 늘 바쁠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라는 것은 의례적인 것들을 실어 놓아서 유념해 볼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학교는 교장 인삿말을 "우리 학교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걸 읽으면 공연히 까칠해집니다.

'이분이 왜 나를 이렇게까지 환영하지?'

'그냥 환영만 해도 충분한데…… "진심"까지?'

 

그쯤에서 멈추는 것도 아닙니다.

'한번도 본심을 드러내는 꼴을 볼 수가 없는데도 '걸핏하면 "진심" "진심" 하는 세상이니까 잘 믿지 않게 되지.'

'그러니까 "진심 좋아하네"가 되는 거지.'

 

'정말로 간곡한 마음이어서 "진심으로"라고 했다면, 그냥 "우리 학교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한 교장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 꼴이 아닌가?'

 

그렇게 써놓은 교장선생님께는 정말로 미안합니다. 물론 '진심으로' 환영하는 분도 계실 것은 당연합니다. 나는 다만 의례적으로 그렇게 적어 놓은 경우를 말할 뿐입니다. 사실은 말이나 글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읽거나 듣는 사람이 당장 눈치채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의례적인 것들 중에 한 가지만 덧붙여 보면, 교감의 역할을 '장리'라고 나타낸 경우도 그럴 것입니다. 요즘은 대체로 교장은 누구, 교감은 누구…… 식으로 직위와 이름만 밝혀 놓은 학교가 대부분인데, 굳이 교장의 역할은 '통할', 교감의 역할은 '장리'라고 밝혀 놓은 학교도 제법 있습니다.

 

'장리'가 도대체 뭔가 싶어서 애송이 교사였을 때 당시 교무주임인가 연구주임인가 어느 '묵직한' 선배 교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장리'라는 말에 무슨 심오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나도 잘 몰라. 예전부터 그렇게 하더라고……"

"예전부터" "예전부터" ……

 

학교는 그동안 이런 말에 아주 이골이 났었습니다. 심지어 개회식이나 폐회식 순을 보면 지금도 여전히 개회사, 국민의례, 대회장 인삿말…… 들이 모두 一 一 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一. 개회사, 一. 국민의례, 一, 대회장 인사……

 

문제는 그렇게 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보면서도 '예전부터 저렇게 했다' 생각하고 넘어가는 그 경향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장리가 뭘까? 내가 참 좋아하던 이분이 교감이 되어 '장리'를 맡게 되었구나, 장리가 뭘까?'

DAUM 어학사전의 풀이입니다.

 

장리①[長利]

 

⑴ [역사] 예전에, 곡식이나 돈을 꾸어 주고 돌려받을 때에는 그 절반에 해당하는 만큼을 이자로 받는 이자율이나 그런 이자율로 빌려주는 돈이나 곡식을 이르던 말. 보통 봄에 농사지을 때 꾸어 주고 가을에 곡식을 거둘 때 받는다.

⑵ 물건의 길이나 수량에서, 본래의 것에 절반이 더한 것.

 

장리②[牆籬/墻籬]

담과 울타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장리③[章理]

밝고 뚜렷한 이치.

 

장리④[贓吏]

[역사] 예전에, 뇌물을 받거나 나라의 돈을 횡령한 관리를 이르던 말.

 

장리⑤[掌理]

어떤 일을 맡아서 처리함. (사람이 어떤 일을) 맡아서 처리하다.

 

장리⑥[掌裏]

⑴ 움켜진 손아귀의 안쪽.

⑵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한이 미치는 테두리의 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리⑦[長吏]

[역사] 고려와 조선 시대,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절도사,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감, 현령 따위

 

 

다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아니 이 일곱 가지 외에 '더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진 심오한 장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말장난 할 필요가 없겠지요. 분명히 '장리(掌理)'이고, 그 '심오할 것 같았던' 장리의 의미는 겨우 '어떤 일을 맡아서 처리함' 정도입니다.

 

"어떤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는가! 이 세상에는 시키지 않아도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 시키면 겨우 해내는 사람, 아무리 시켜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어떤 일을 맡아서 스스로 잘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 따위 설명이라면 상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 내가 그리워하는 그분, 그분이 교감이 되어 어떤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려니까 어정쩡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느낌입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공문서 처리에 허덕이는 교감을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감은 수많은 공문이나 처리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저에게 매우 미안해 했습니다.

 

"교감선생님, 제 눈치 보지 마십시오. 공문처리는 어차피  하실 일 아닙니까? 수업 하는 교사 부르지 않으시는 것만 해도 교감선생님께 무한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 수업의 질은 교감선생님께서 보장하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너무나 서글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겐 다 흘러간 옛날 이야기죠. 요즘은 말끔히 개선되었을 테니까요. 나는 퇴임한 지가 오래된 구세대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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