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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그리운 아이들

by 답설재 2013. 1. 28.

 

 

 

 

 

그리운 아이들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 소집 기간입니다. 자녀를 낳아 처음으로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웬만한 사람은 다 경험하는 일인데도 마치 자신만 아이를 가진 것처럼 무한히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그 아이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왕자나 공주인양, 아니면 단 하나뿐인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처럼 얼마쯤 불안해 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신입생 아이를 태우고 학교로 들어오려는 승용차들을 교문에서 제지하게 했더니 "그럼, 교직원들은 왜 승용차를 가지고 들어가느냐?"고 대어드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얼마나 소중한 자식인데……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지요.

  그렇게 항의한 그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어 볼 걸 그랬습니다. 이제는 교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날 일도 없거니와 등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십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예비 소집은 지난 23일에 실시됐답니다. 교동초등학교의 경우 지난해에는 신입생이 21명이었는데 올해엔 또 6명이 줄어들어 달랑 15명이었답니다. 서울에는 저출산과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1 이처럼 신입생이 5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니 학교'가 무려 35개교에 이르고, 교동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학교이긴 하지만, 1970년대에는 전교생 수가 5000명이 넘어서 '콩나물 교실'을 연상시켰는데 이젠 전교생이 109명에 불과한 미니 학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2

 

 

 

 

  이런 뉴스를 보면 의견을 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이 아이들 중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듯 아주 특별한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오도록 가르쳐 보겠습니다. 여러분!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먼저 그 소중한 자녀를 처음 학교에 보내게 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 그러십시오. 까짓거 우리 애는 이미 다 틀렸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학부모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이렇게 대답할까요?

  "좋습니다. 혹 우리 애가 그 단 한 명의 용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선생님들 생각은 어떨까요?

  '내가 이 아이들을 다 잘 가르쳐 봐야 별 수 없다. 어차피 용은 한두 마리뿐이지 않겠는가! 아예 한두 녀석 잘 가르쳐 나중에 훌륭한 물이 되면 나를 찾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선생님이 있을까요?

 

  내 자식, 내 제자들을 두고는 할 수 없는 생각인데도 사회적으로는 왜 그런 말이 회자되는 것입니까? 걸핏하면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까?

 

  한 명 한 명 마주보면서 할 수는 없는 말이지만, 추상적으로, 일반적으로, 전체적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입니까? 아이들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지만 교육적으로는 해도 괜찮은 말입니까?

 

  저로서는 아이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추상적, 일반적, 전체적으로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말을 하는 것은,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저 소중한 아이들, 그 소중한 아이들을 낳아서 학교에 보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영재교육'이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래봤자 별 수 없고, 이른바 똑똑한 아이 몇 명을 뽑아서 상급 학년에서 가르쳐야 마땅한 내용을 미리 가르치는 참 어처구니없는 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느 기관이나 학원 같은 곳에서 그런 얼빠진 짓을 하는 거나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반 편성을 한답시고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그것도 '버젓이' 출제한다고도 합니다.

 

  그런 학교, 그런 학원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교육감은 영재교육 대상을 5%로 늘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자부하는 마지막 '엘리트주의자'였을까요?

  마지막? 지금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초·중·고등학교에도 있겠지만 대학에는 더욱 많아서 학교에서는 당연히 '성적제일주의'로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여기는 교수들이 즐비합니다. 말하자면 그래야 자신과 같은 영재가 출현한다는 것이겠지요.

  아! 기가 막히는 개천 출신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대로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특히 그 부모가 하는 짓을 보고 그대로 살아가고, 교육자가 되면 배운 이론은 다 팽개치고 어릴 때 가르쳐준 교사들처럼 가르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개천 출신 용의 의식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출산율 저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합니다. 이러다가는 온 나라가 노인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렇다고 여성들을 보고 아이를 좀 낳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몇십 만원 준다고 아이를 쑥쑥 낳아줄 여성도 없지 않습니까? 아이 낳아 봤자, 개천에서 용이니 뭐니 하는 세상에 무슨 서러움 받으라고 낳겠습니까?

 

  그건 다른 대책을 요청하는 일이고, 교육에서는 그 여성들이 이미 낳아준 아이들이라도 정성껏, 지혜롭게, 최대한의 노력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5%니 뭐나 하지 말고 모든 아이를 그 개성과 적성대로 꽃피워 주어야 합니다.

  그 까닭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궁금하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값진 아이인가, 일일이 그 아이들을 낳아준 여성들을 찾아가 물어보십시오. 우선 주변에서, 가족 중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부터 물어보십시오.

 

  모든 아이를 영재삼아 키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모자라서, 아이들 하나하나의 영재성을 파악하지 못할 뿐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서러운 아이를 만들고, 태어나자마자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로 치부합니다.

 

  아이들 곁을 떠나 보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알게 됩니다. 공연히 청소 좀 잘하라고, 좀 조용히 하라고 다그치지만 말고, 그 아이들의 영롱한 눈이나 들여다보십시오.

 

 

 

 

 

 

  1. 이걸 지리학에서는 도너츠 현상이라고도 함. [본문으로]
  2. 중앙일보, 2013.1.24,12면, 「반가워 친구야... 신입생 50명 안 되는 '미니 초등교' 서울에 35곳」(사진 뉴스).서울지역 취학예정자 수 하위 10개교 통계는, 2013.1.16, 국민일보 쿠키뉴스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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