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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학교,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곳

by 답설재 2013. 6. 26.

 

트랜스미디어연구소의 한반도 인터뷰 프로젝트 70mK: 7천만의 한국인들 인터뷰 영상전시 2013 06/10-13. 서울메트로 미술관 2관

 

 

 

 

 

 

경복궁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내려가다가 이 화면을 봤습니다. 크기가 대단했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서 브로슈어를 찾아봤습니다.

 

트랜스미디어연구소의 한반도 인터뷰 프로젝트 '70mK, 7천만의 한국인들' 국내 최초의 영상인터뷰 전시 : 본 전시는 지난 8개월간 500여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높이 3미터 길이 60미터의 대형 화면에 뿌려진 2500개의 화면에서 총 120분 분량의 영상인터뷰가 진행된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면에 등장하는 저 수많은 학생들이 제각기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설명을 더 읽어봤습니다.

 

<70mK>는 70million Koreans 즉, '7천만의 한국인들'을 뜻하는 줄임말로 남과 북, 7천만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트랜스미디어연구소가 진행하는 대규모 인터뷰 프로젝트이다. <70mK>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영화감독 변혁은 70mK를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영상데이터베이스 작업'이라고 소개하며, 7천만의 한국인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의식 지형도'를 그려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힌다.

 

 

 

 

 

 

설명을 다 읽어도 이 프로젝트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의 의미를 석연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석연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면, 그럼 조금은 파악했나? 무얼 알게 되었나?"

그렇게 물어도 그렇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별로 대답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게 솔직한 대답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이런 몇 가지 대답이나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크기로 봐서 어마어마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 많은 사람이 동시에 뭐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미 구세대에 속하는 나이여서 뭐가 뭔지 얼른 파악하지 못한 까닭일까요?"

"설명서에는 이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의식 지형도를 그려내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지형도를 말하는지 도무지……"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말할 기회는 주지 않고 그저 설명을 듣는 훈련만 시킨다면, 그 아이들이 학교를 나와서는 제각기 떠들어대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는 않는 사회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지금 우리 교육은 이미 그런 징조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각자 자기 주장만 옳다고 떠들어대는 사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

 

 

 

 

 

 

그러나 그렇진 않겠지요? 그런 걱정은 기성세대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한 퇴역 교원의 쓸데없는 망상이겠지요?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를 다 따라갈 수는 없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음악을 좀 듣고 싶어도 '30분이나 한 시간 동안 책을 보면 몇 십 페이지는 읽을 텐데……' 싶어서 아예 단념하고 맙니다.

"그럼,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보면 될 것 아닌가?" 하겠지만, 그게 숙달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그 짓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해볼 용기도 없습니다.

 

돌아서서 전철역으로 내려가며 생각했습니다.

'이러지 말고 인터뷰한 것을 한 명씩 이야기하게 해달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웃기지 말라고 하겠지?'

'숨막히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겠지?'

'120분 분량을 누가 언제 듣고 앉아 있겠느냐고 되묻겠지?'

 

 

 

 

 

 

아이티(IT) 채널 '형태근의 TALK IT'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마침 새파란 나이에 구글 사업제휴 상무가 된 미키김1이라는 청년이 실리콘밸리의 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미키김에게 '청취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요청하자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주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어릴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부를 하라.

2. 식상한 용어지만 '글로벌 사회'에 도전하려면 역시 식상한 주문일지 모르겠으나 그 도전에 필요한 전략을 가져라.

 

그의 강의를 들으며 당장 "저 청년의 이야기 좀 들어보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당장 "떠들지 말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우선 "똑바로 앉아서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라!"고 가르칩니다.   "미키김? 그까짓 놈이 뭘 알아! 여기 우리나라 학교에 와서 좀 가르쳐 보라고 해!"  그런 목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그 12년간 줄기차게 듣다가 세월이 다 갑니다. 멋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인간의 본성대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시도하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두어 달만 지나면 '이곳은 듣는 곳이구나' 하고 우리나라 학교의 기본적인 성격을 체득하게 됩니다.

 

 

 

 

 

 

나는 그게 선생님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들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제발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학교를 만들어 주십시오."

"학교는 듣는 곳이 아니라 말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말을 해봐야 듣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라야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토론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됩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일방적인 지시 전달 회의를 그만두고 토의 토론이 이루어지는 회의를 하게 됩니다."

"국회는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남의 말을 경청하는 문화가 꽃피게 될 것입니다."

"제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다 나서면 뭐가 되겠습니까?"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재미있게 조건에 맞추어 이야기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그게 학력이고 실력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부탁을 선생님들께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하겠습니까?  학교는 "듣는 곳인가, 이야기하는 곳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야기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걸 모르니까 자꾸 아이들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게 되고,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하게 되고, "시끄럽다"고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서며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내 생각들이 다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구세대는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살아갈 신세대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제각기 떠들어댄다 해도 다 알아듣고 남의 말쯤은 들어보나마나 자기 생각만으로, 자기 생각대로만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말하자만 '희한한' '기상천외한' 사회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난 우리 교육'은 그걸 미리 알아채고 아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공부는 소홀히 하고 강제적으로 듣는 '훈련'에 치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나중에 너희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 실컷 떠들어라! 지금은 잔말 말고 들어라!"

 

모처럼 시내에 나갔다가 신기한 것을 구경하고 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1. 미키 김 (김현유, Mickey Kim) 기업인출생1976년 용띠 소속 구글 상무 학력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대학원 MBA 졸(DAUM에서 인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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